# 으레 중국 하면 크고 거대한 것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중국인들이 올해의 한자로 꼽은 것은 “작고 미미하다”는 뜻의 ‘미(微)’였다. 크고 거대한 것을 지향하던 중국인들에게조차 작고 미미한 것이 의미 있게 다가온 셈이다. 본래 삶을 근원적으로 지탱하는 힘은 크고 육중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고 미미한 것에 있다. 크고 육중한 것은 한순간에 날아가도 작고 미미한 것은 삶의 구석구석 어딘가에선가 질긴 생명력을 지속하기 때문이리라.

 # 오래전에 무심코 꽃 한 송이를 작은 물컵에 담가두었던 적이 있었다. 며칠 안 가서 그 꽃이 시들자 작은 잎새가 대여섯 개 붙어 있는 줄기만 남았지만 버리지 않고 틈틈이 물을 갈아줬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정말이지 그렇게 1년을 넘겼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중 작디작은 한 잎새 위에서 움 같은 것이 돋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마침내 거기서 새 잎과 줄기가 작고 미미하지만 돋아나는 것이었다. 정말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고 미미한 잎새에서조차 또 하나의 생명이 움트며 발원하는 것을 보면서 새삼 느꼈다. 작고 미미한 것일지라도 정말이지 놀랄 만큼 위대한 생명의 힘을 담고 있음을!

 # ‘위산일궤(爲山一<7C23>)’라는 말이 있다. 산을 만들려면 삼태기 하나에 흙을 담아 옮겨 붓는 일부터 시작하기 마련이고, 그 산이 완성되는 것 역시 삼태기 하나를 더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렸다는 얘기다. 작고 미미한 것, 사소한 그것들이 결국 큰일을 이룬다. 인생은 어디서 어떻게 역전하는가? 큰 거 한 방에 그렇게 되기보다는 작고 미미한 것에서 역전의 씨앗은 배태된다. 작고 미미한 바늘구멍 같은 것이 끝내는 거대한 댐을 무너뜨린다. 모든 균열은 작고 미미한 데서 시작된다. 큰 구멍과 커다란 균열은 얼른 보고 두려워서라도 메운다. 하지만 작은 구멍과 미미한 균열은 으레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두기 쉽다. 그것이 결국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하고 큰 삽이 아니라 포클레인을 동원해도 어림없게 만드는 사태의 시작이요 발단이다.

 # 모든 일의 시작은 작고 미미한 것이다. 하지만 그 끝은 누구도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작은 시작 없이 큰 결과는 기대할 수 없다. 작고 미미할지라도 첫발을 떼고 시작하는 것은 거대한 완성을 지향하는 놀라운 기적에 다름아니다. 그래서 『성서』에도 있지 않은가.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으레 돈 있고 권력 있는 크고 위압적인 것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작 세상을 바꾸는 진짜 힘은 돈 없고 권력 없는 작고 미미한 것들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썼던 에른스트 슈마허의 또 다른 저술인 『굿 워크(좋은 일)』에서 “작은 일터가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든다”고 했다.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싶다면 작고 미미한 것들을 다시 보라. 아니 제대로 보라.

 # 역사를 보는 시각에는 ‘거시사(巨視史)’도 있고 ‘미시사(微視史)’도 있다. 역사의 풍광을 ‘롱샷’으로 찍을 수도 있고 줌으로 끌어당겨 ‘클로즈업’시켜 찍을 수도 있다. 전자가 ‘거시사’라면 후자는 ‘미시사’다. 작고 미미한 것들을 제대로 보려면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서 산길 모퉁이에 핀 야생화를 찍는 사람처럼 하면 된다. 이른바 ‘줌인(zoom-in)의 리얼리티’를 보는 것이다. 그 작고 미미한 것들이 얼마나 큰 감동으로 몰려오는지는 찍어보지 못한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다. 초라하리만큼 작고 미미하게 피어 있는 들꽃이 카메라의 렌즈 안에 들어오는 순간 얼마나 황홀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는지…. 그래서 연말이면 이곳저곳에서 보내오는 탁상용 캘린더는 으레 그 들꽃들의 잔치 아니던가. 그 작고 미미한 들꽃을 찍으려면 찍는 이가 그만큼 낮아져야 한다. 때론 엎드려야 한다. 눈높이를 그 작고 미미한 것들에 맞춰야 한다. 그래야 그 작고 미미한 것들의 세계에서 진짜 놀라운 세상을 마주하게 되리라.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