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수십개국에서 권력 지도가 바뀌는 선거가 예정된 올해, 주요국 중 처음으로 러시아 대선이 치러졌다. 결과는 예견됐던 대로 ‘강한 남자’푸틴의 복귀였다. ‘현대판 차르(황제)’라는 푸틴은 승리를 선언하며 뜬금없이 눈물을 흘렸다.

푸틴은 대선을 앞두고 틈만 나면 상의를 벗어젖혀 근육질 몸매를 드러내고 맨손으로 프라이팬을 구부리며 힘자랑을 했다. 노골적이고 촌스러울 정도로 ‘강함’을 과시해온 푸틴은 이번 선거 유세 때도 ‘강한 러시아 재건’을 외쳐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싶은 러시아인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런 푸틴이 왜 울었을까. 이번 대선은 푸틴에게 어려운 선거도 아니었다. 푸틴 지지율은 선거 직전 66%까지 치솟아 경쟁 자체가 무의미한 상황이었다. 3선 연임을 금지한 나라에서 연임한 후 한 번 임기를 건너뛰고 다시 도전해 승리했다는 게 감격스러웠다면 모를까, 푸틴이 울 이유는 없었다.

따라서 푸틴의 눈물은 갖가지 해석을 낳았는데, 그중 하나가 반대파와도 소통에 나서는 ‘부드러운 푸틴’의 시작을 알린다는 것이다. 사람은 약할 때 소통하기 더 쉬운 상태가 된다. 독일서 활동하는 설치미술가 양혜규는 몇년 전 인터뷰에서 “(내가 약해졌을 때) 다른 사람과 뭔가를 공유할 수 있는 최적 상태가 이뤄진다”고 했다. “내가 강하고 자신감에 차 있을 때보다는 부족한 게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내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린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때로 울어서 급박한 소통을 효율적으로 이뤄낸다. 2008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밀리고 있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유권자 간담회에서 눈물을 쏟았다. 간담회 참석자가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힐러리는 “쉽지 않다”고 대답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던 것이다. 지나치게 강하다고 미움받던 힐러리는 그 눈물로 분위기를 일신해 지지율이 일시적으로 치솟았다.

푸틴의 눈물을 좀 과대 해석하자면, 인간적이고 약한 모습을 보여 반대 세력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셈이다. 실제로 푸틴의 앞날은 반대 세력과 소통하는 데 달려 있다. 푸틴은 강한 모습으로 유권자들을 매료시켜 대선에서 승리할 순 있었지만, 장기 집권에 불만을 품은 세력을 같은 방식으로 이끌고 갈 순 없기 때문이다. 이미 러시아에선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반(反)푸틴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리비아의 카다피가 힘이 없어서 수십년을 지켜온 권좌에서 물러난 것이 아니었다. 이집트의 무바라크도, 예멘의 살레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너무 강했기 때문에, 약한 곳이 너무 없는 척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과 소통할 접점을 만들지 못했고 그것이 정권의 치명적인 약점이 됐다.

푸틴은 당선 이후 야권 지도자들과 대화하는 등 반대 세력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푸틴의 눈물 효과는 국경 안에서 끝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냉전시대 미국과 함께 세계를 주물렀던 구(舊) 소련에 대한 향수를 자극해 대통령에 당선된 만큼, 푸틴은 현재 미국과 중국 중심으로 짜여가는 국제 질서에 영향을 끼치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느낄 것이다. 시리아·이란·북한 문제 등 과제는 산적해 있다. 핵 보유국이자 산유국인 러시아의 푸틴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어떤 카드를 내미느냐에 따라 핵 안보와 유가(油價)는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우리가 가장 취약한 부분이기도 하다. 푸틴의 눈물은 안에선 어떨지 몰라도 밖에선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