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작가들은 작품 속에 신을 끌어들이기를 주저하지만 작품 속 주인공은 절체절명의 순간엔 신에게 다가간다. 작품 속 주인공만이 아니라 주인공을 만들어내는 작가도 때론 같은 길을 걷는다. ‘무진기행’의 작가 김승옥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술에 빠졌다. 글도 버렸다. 1980년 그는 어둠 속에 떠 있는 ‘흰 손’을 봤다. 그 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며 창작에서 손을 떼고 신앙 간증을 하러 나섰다.
▶지난해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는 1985년 쉰넷에 가톨릭의 문을 두드렸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장의사에게 맡겨 장례를 치르니 너무 그로테스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사후에는 그런 대접을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쫓겨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1996년부터 2년 동안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식지 ‘서울주보’에 신앙 에세이를 실었다. ‘주님, 빛이 되려면 제 몸을 태워야 하니 저는 빛이 되기를 사양하겠습니다. 주님의 빛을 따라다니는 해바라기가 되겠습니다.’
▶1987년 마흔둘에 가톨릭 신자가 된 소설가 최인호가 새해 들어 ‘서울주보’에 암 투병기를 싣기 시작했다. 2008년 침샘암 판정을 받은 그는 자신이 지은, 지었을지 모를 죄와 육신을 갉아먹는 병마를 겹쳐 떠올렸다. 그는 병원 복도에서 머리를 깎은 어린이 암환자와 마주쳤다. ‘주님, 저 아이는 누구의 죄 때문에 아픈 겁니까’라며 신에게 항의하듯 물었던 그도 결국 신의 품에 안겼다. 신의 별은 죄의 나락 속에 빠진 인간에게 더 빛나 보인다고 한다. 죄는 병마(病魔)와 동의어(同義語)다. 최인호 역시 병마 속에서 신의 별과 만났다.
▶최인호는 ‘주님께서 우리를 벼랑 끝으로 부르시는 것은 우리가 날개를 가진 거룩한 천사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라며 항암 치료의 고통을 이겨냈다. ‘내 몸은 목판의 엿가락. 엿장수인 주님 뜻대로 하소서’라고 했다. 신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투항(投降)이 아니라 용기다. 최인호의 순명(順命)에서 작가의 또 다른 용기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