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은 거래요. 어떤 걸 집어 들게 될지 모르니까.” 이 유명한 대사를 남긴 ‘포레스트 검프'<사진>는 IQ 75 검프의 인생역전기인 동시에 첫사랑을 향한 애절한 순애보이다. 스쿨버스에서 모두가 그를 외면할 때 선뜻 옆자리를 내주었던 소녀가 제니다. 왕따 소년의 유일한 친구 제니는 검프가 평생에 걸쳐 애타게 갈구하는 구원의 여신이 된다.

제니는 신기루 같은 욕망을 좇아 세상을 떠돌고, 검프는 결코 손에 잡히지 않는 제니를 따라 뛰고 또 뛴다. 왜 뛰어야 하는지 고뇌하지 않으며 나중에 얼마나 숨 가쁠지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제니의 삶이 계속 피폐해져 갈수록 오로지 제니만 바라보며 묵묵히 달린 검프의 삶은 점점 발전해간다. 영화는 운명을 잘못 타고났다고 투덜대는 이들에게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음을 설파한다. 검프는 그 ‘무한 긍정이론’의 살아있는 신화이다.

탁구 챔피언, 전쟁 영웅, 성공한 사업가, 달리기 정신운동(?)의 창시자라는 직함을 두루 갖추게 된 검프가 끝내 원하는 것은 제니를 되찾는 것뿐이다. 제니가 클럽에서 취객에게 희롱당할 때, 반전운동을 하는 애인에게 구타당할 때도 검프는 상대를 응징하고 여자를 적극적으로 ‘지켜주려’ 한다. 첫사랑으로 상징되는 제니는 결코 잃어버려서도 안 되고 타락시켜서도 안 되는 어떤 이상향의 이름이다. 즉 현대인이 잃어버린 양심의 가치 같은 것을 상징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남자들이 왜 첫사랑에 집착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재미있는 힌트로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긴 세월 타지를 떠돈 제니는 죽을병에 걸려서야 검프를 찾아온다. “사실 네 아들이야.” 그 한마디와 함께 아이를 깜짝선물처럼 내민다. 과거의 순정한 가치는 소멸해도 미래의 희망만은 아직 남아있다는 의미일까. 물론 검프는 친자 확인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제니가 죽은 뒤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사랑으로 보듬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낡아버린 운동화를 신은 검프의 마지막 모습이 왜 그렇게 지치고 피곤해 보이는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