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12.13 23:19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13일 타계했다. 박 회장은 1968년 뻘밭을 매립한 포항 바닷가에 쇠파이프를 박는 작업을 진두지휘하며 포항제철을 건설해 ‘무철(無鐵)의 나라’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 수준의 철강국가로 끌어올린 ‘철인(鐵人)’이었다. 정주영·이병철 회장에 이어 한국 경제 근대화를 이끈 큰 별이 진 것이다.

국민들은 지금 40여년 전 영일만 허허벌판에 서서 안전모를 쓰고 지휘봉을 휘두르며 제철소 건설작업을 독려하던 박 회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당시 미국·일본·독일 등 선진국은 물론 국내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한국 경제력으론 종합제철소는 무리”라고 했다. 세계은행은 “한국의 외채상환 능력과 산업구조를 볼 때 일관제철소 건설은 시기상조”라는 보고서를 내고 한국 대신 브라질 제철소 건설을 지원했다.

포항제철은 제철소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돈·기술·경험 어느 하나도 없는 맨손으로 시작했다. 제철소가 있던 파키스탄을 제철 선진국으로 알고 견학단까지 파견하기도 했다. 있는 것이라고는 박정희 대통령의 철에 대한 집념과 이 집념을 떠받친 박 회장의 추진력뿐이었다. 박 회장은 직원들에게 “실패하면 우리 모두 ‘우향우’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자”고 했다. 죽기를 각오한 이 집념과 사명감이 합판·스웨터·가발 수출로 밥술을 뜨던 대한민국에 ‘산업의 쌀’이라는 철의 시대를 열었다.

포스코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설비를 더 늘릴 수밖에 없다는 판단으로 1970년대 광양에 제2 제철소 건설을 추진할 때 당시 대통령 측근들은 경쟁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이유로 다른 기업에 제철소를 넘겨주기 위해 1년 가까이 박 회장이 대통령을 만나지 못하도록 하면서까지 제동을 걸었다. 박 회장은 결국 언론 인터뷰를 통해 사정을 밝혔고, 이 신문기사를 본 박 대통령이 박 회장을 불러 사정을 듣고서야 광양제철소 건설이 가능해졌다.

우리 손으로 철강을 댈 수 있었기에 자동차와 조선 산업을 주축으로 한 중화학 공업 시대를 열 수 있었고, 중화학 공업의 토대가 있었기에 오늘의 IT시대도 가능했다. 박 회장은 한때 정치의 길을 걷기도 했지만 그건 잠시의 외도(外道)였을 뿐, 그는 영원한 ‘포철 회장’이었고, 우리 기억 속에 언제까지나 ‘철인(iron man)’의 모습으로 새겨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