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 하리가 사형장에서 마지막 한 말은?①

마타 하리는 여간첩의 대명사다. 그녀의 미모와 섹시한 이국적 춤은 1900년대 초 유럽 특히 프랑스 환락가를 드나들던 돈 많고 권세 있는 남자들의 애간장을 녹였다. 그런 그녀를 프랑스 정보 당국이 첩보요원으로 포섭하여 프랑스의 숙적 독일을 상대로 간첩 노릇을 시킨다. 그러나 그녀는 독일 고위관리들과 접촉하다 오히려 독일 측에 포섭된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마타하리는 환락가 댄서와 이중간첩 역할을 동시에 하게 된다.

그녀의 행동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 프랑스 정보 당국은 그녀를 비밀리에 추적한 끝에 그녀가 독일에 중요한 정보를 넘겨준 사실을 포착하고 그녀를 체포한다. 그녀는 군사재판에 넘겨져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리고 그녀의 간곡한 구명 호소에도 그녀는 전쟁 말기인 1917년 10월15일 총살형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때 그녀 나이 겨우 마흔하나. 여기까지는 대개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녀가 정말 죽을 죄를 지은 간첩이었나 하는 것과 그녀가 어떻게 죽어갔는가 하는 것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 구글 검색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그녀의 사형집행 현장을 보고 보도한 영국 기자의 기사가 하나 있었다. 그 기사를 소개하기 전에 먼저 마타 하리의 생애를 간단히 요약해 본다.

마타 하리.
마타 하리.

마타 하리는 1876년 8월7일 네덜란드에서 마르가레타 첼레(Margaretha G. Zelle)라는 이름으로 태어난다. 모자를 파는 상인이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하고 어머니는 병으로 앓다가 딸이 15세 때 사망했다. 그녀와 세 남동생은 여러 친척집에 얹혀살았다. 1미터 78센티미터의 큰 키에 날씬한 몸매, 그리고 예쁜 얼굴을 가진 그녀는 19세가 되었을 때 동인도제도(당시 네덜란드 식민지, 현재는 인도네시아 영토)에서 근무하는 네덜란드 육군대위가 신부를 구한다는 신문 광고를 보고 자기 사진과 자기 소개서를 그에게 우송한다. 21년이나 연상인 대위는 그녀의 미모에 반해 즉각 그녀와 결혼한다.

그녀는 곧 아들과 딸을 낳았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생활은 9년 만에 끝난다. 남편은 딸 같은 아내의 미모에 쏠리는 다른 남자들의 시선이 싫어 자주 싸움을 했고 폭음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아들이 의심스러운 식중독으로 죽자 남편은 딸을 데리고 집을 나갔고, 마타 하리는 유럽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빠리로 진출, 프랑스 외교관의 정부가 되었고 인도네시아와 버마에서 배운 원주민 춤으로 환락가의 여왕이 된다. 그녀는 Mata Hari(인도네시아말로 ‘태양의 눈’ 이란 뜻)라는 예명도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1900년대의 보수적 유럽사회에서 일종의 스트립쇼를 연출, 남성고객들을 사로잡았다. 한번은 거의 나체로 백마를 타고 무대에 나타난 적도 있었다. 자연히 돈 많고 권력 가진 남자들이 그녀 주위에 모여들었다.

그러나 메뚜기도 한철, 나이가 30대 중반에 들어선 1910년대부터 그녀의 인기는 시들해졌고 돈을 벌기 위해 그녀는 몸을 파는 일이 잦아졌다. 특히 1차 세계대전이 터진 1914년 이후에는 20대 젊은 러시아군 장교를 애인으로 두게 된 그녀는 애인이 한쪽 눈에 부상을 당해 실명이 되면서 돈이 더 필요해 지자 더 많은 각국 요인들과 잠자리를 같이했다.

그래서 프랑스는 그녀를 스파이로 이용했고 결국 프랑스와 독일의 이중간첩이 된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마타 하리가 대단한 정보를 독일 측에 넘긴 것도 아니라고 한다. 프랑스군대는 자기들의 군사작전이 실패할 때마다 그것이 마타하리의 친독일 간첩행위 때문이라며 그녀를 희생양으로 만들었고 끝내는 그녀를 억울하게 처형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1917년 2월13일 마타하리의 군사재판은 단 45분 만에 끝났다. 그녀는 법정에서 자기가 독일군 장교들로부터 잠자리 대가로 돈을 받은 적이 있고 또 독일 여행 때 국경에서 도난당한 자신의 소지품에 대한 배상금으로 2만 프랑을 받았다고 진술했으나 재판부는 믿지 않았다. 그녀는 또 자기가 courtesan(코티잰/고급창녀)는 맞지만 절대로 독일 간첩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변호사(한때 그녀의 애인)는 중요한 증인을 내세 우려했으나 군사법정은 이를 허용하지 않고 일사천리로 재판을 진행했다. 사형이 선고되는 순간 마타하리는 Impossible!(있을수 없는 일이야!)라고 두 번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로부터 8개월 동안 쥐가 득실거리는 군형무소에서 갇혀 지내며 그녀는 프랑스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냈으나 끝내 처형되고 만다. <②편에 계속>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