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1.02 22:35
역사적 전환기 맞은 한국 경제… 해외 시장 진출, 중국 의존도 높아
다른 신흥국들로 다각화하고 물가상승 막는데 총력 기울여야… 시한폭탄 같은 금융시장 불안, 주도권 쥐고 위기 대비를
후카가와 유키코 日 와세다대 교수
1905년 일본이 전쟁에서 러시아에 승리한 것은 역사의 톱니바퀴를 돌린 사건이었다. 백인의 유색인종 지배라는 기존의 질서를 깨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2012년은 이 큰 흐름이 어떻게 현실로 나타났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한 해가 될지 모른다. 2011년 세계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중국은 2위, 브라질은 6위, 인도는 9위이다. 그리고 20위권 내에 멕시코·터키·인도네시아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반면 일찍이 역사에 전환점을 찍은 일본을 포함해 미국과 유럽 선진국은 하나같이 곤경에 빠져 있다. 이들은 재정 위기의 대처에서 정상적인 정책 수단을 거의 소진한 상태이며, 민주주의의 정치 비용으로 인해 시장의 폭주(暴走)조차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세상이 크게 바뀌려 하는 것이다.
한반도에도 역사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 교체는 예상보다 빨랐다. 북한의 신(新)체제는 충분한 준비기간을 거치지 못했고, 젊은 후계자는 정치적 기반을 굳히기까지 거칠고 다양한 위험요소에 직면할 것이다. 정권교체기의 중국,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미국과 러시아 등 이해 관계국들은 북한의 불안정한 모습에 예민하고 민첩하게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당사국인 한국이야말로 20년 만에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동시에 맞고 있다. 이 역시 한반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신용카드 거품 붕괴, 2008년 리먼 쇼크, 그리고 최근의 경제적 혼란은 정권교체를 전후한 시점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정국변동 자체가 금융자본시장에 큰 영향을 줬고, 금융감독 시스템도 선제적인 예방 조치를 발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계(視界) 제로’의 국면에서 한국 경제는 어떻게 대처하고 진보해야 할까? 우선 지금까지 비교적 용이하게 양성해온 시장개척 능력으로 신흥시장의 다각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중국 의존도는 너무 높다. 중국 외 다른 신흥시장으로 대외경제를 분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투자 형식에서도 대기업 투자의 경우 여전히 모든 리스크를 처음부터 짊어지는 ‘그린필드 투자'(Green Field Investment·투자대상국의 용지를 직접 매입해 공장이나 사업장을 짓는 방식)에 치중하고 있다. M&A나 다양한 제휴를 통한 투자로 기업들이 개별 리스크를 분산하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일본은 엔화가치 상승에 괴로워하면서도 2011년 세계 620개 기업을 800억달러에 매수해 리스크의 분산과 신흥시장 진출을 도모했다. 원화 약세의 국면이지만, 한국 대기업들은 신흥시장 개척에 투입할 수 있는 충분한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다.
둘째, 한국은 물가안정을 위한 정책 수립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가상승은 서민생활을 직접 압박한다. 선거의 해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정치가들은 중저(中低) 소득층의 불만을 달랜다는 명목으로 임기응변식 수당(手當)과 정부 보조의 확대를 추진하기 마련이다. 물론 거시정책에는 한계가 있다. 북한을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와 고령화 리스크를 이중으로 짊어진 한국은 재정건전성에 특별한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이미 팽창한 가계부채와 침체된 부동산시장으로 인해 금리정책에도 한계가 있다. 선거라는 특수한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FTA의 이점을 살려 수입자유화를 적극 추진하고 본격적인 에너지 절약 추진과 유연한 가격 설정으로 공공요금의 실질적 인하를 도모해야 한다.
셋째, 한국은 시한폭탄처럼 폭발한 금융자본시장의 불안정성을 완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한국 외환시장에서는 외자(外資) 금융기관이 주도세력이다. 비거주자의 자금 조달이나 운용을 국내 시장과 분리하여 규제를 적게 하고 자유로운 거래를 인정하는 역외(域外)시장도 너무 크다. 건전성 리스크를 안는 외국 자본이 지정학 리스크까지 직면하면 극단적으로 움직이기 쉽다. 가계부채의 팽창과 한국 금융기관의 불량채권 리스크에 대한 충분한 충당금을 준비하는 것은 물론, 극단적인 혼란이 발생했을 때 발동할 수 있는 자본 규제, 이미 체결된 통화스와프의 구체적 실천방안을 수립하는 것도 시야에 넣어야 한다. 주도권을 쥐고 자신의 위기에 대처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한반도의 변화 국면에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위기 대응책을 확실히 준비한 한국 자신이다. 안정적인 경제력, 성숙사회의 구심력(求心力), 국제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정치·외교력…. 역사의 톱니바퀴가 다시 돌아가는 순간까지 남은 시간은 길지 않다. 오랫동안 한국이 연마해온 경제개발의 진가(眞價)를 보여줄 날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