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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Leadership Archives - Blog of Jason Shin</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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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Leadership Archives - Blog of Jason Shin</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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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0년 이상 장수 기업들의 3가지 공통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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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admin]]></dc:creator>
		<pubDate>Sun, 25 Sep 2016 15:01:17 +0000</pubDate>
				<category><![CDATA[Business and Politics]]></category>
		<category><![CDATA[Educatio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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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Why: 위클리비즈가 10년간 인터뷰한 55개 장수 기업 분석] 훌륭한 경영자 꾸준히 배출·선구자 정신·장인 정신 경영학자들은 기업을 생명체에 비유한다. 태어나 성장하다가 어느 순간 성장이 정체되고 늙어서 죽는 것이 생명체의 운명이다. 한 나라도 개국 후 300년을 넘기기 어렵다. 하물며 기업은 어떨까? 리처드 포스터 예일대 경영학과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2012년 기준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38;P)500지수에 속한 대기업 평균 수명은 고작 [&#82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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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div id="csHeader" class="csh_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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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 class="prev">[Why: 위클리비즈가 10년간 인터뷰한 55개 장수 기업 분석]</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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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class="news_article">
<div id="news_body_id" class="news_body fontset_mal">
<h3 class="news_subtitle"></h3>
<div class="par">
<p><strong><span style="font-size: large;">훌륭한 경영자 꾸준히 배출·선구자 정신·장인 정신</span></strong></p>
<p>경영학자들은 기업을 생명체에 비유한다. 태어나 성장하다가 어느 순간 성장이 정체되고 늙어서 죽는 것이 생명체의 운명이다. 한 나라도 개국 후 300년을 넘기기 어렵다. 하물며 기업은 어떨까? 리처드 포스터 예일대 경영학과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2012년 기준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amp;P)500지수에 속한 대기업 평균 수명은 고작 15년에 불과했다. 회사가 성장하는 전략은 제각각이지만, 50년 넘게 오랫동안 생존한 기업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위클리비즈가 지난 2006년부터 10년 동안 인터뷰한 장수(長壽) 기업 55곳을 분석한 결과 알파벳 P로 시작하는 세 가지 공통분모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p>
<p>첫째는 사람(people)이다. 장수 기업은 결코 단 한 영웅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철저한 검증을 거쳐 훌륭한 경영자를 꾸준히 배출해내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둘째는 선구자(pioneer) 정신이다. 기업이 스스로 시장 변화에 발맞춰 핵심 역량을 바꿔나가는 것이다. 셋째는 장인 정신(professionalism)이다. 끊임없이 혁신을 찾는 와중에도 전통과 원칙을 지킨다.</p>
</div>
<div class="news_imgbox def">
<figure><img decoding="async"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9/23/2016092302026_0.jpg" alt="" /><figcaption>/조선일보 DB</figcaption></figure>
</div>
<div class="par">
<p><strong>People: 철저한 검증으로 자격 갖춘 경영진 선임</strong></p>
<p>▲<b>빌 메리어트</b>(Marriott) 미국 메리어트인터내셔널(1927년 설립) 회장(2015년 2월 7일자)</p>
<p>“첫째, 둘째, 셋째가 모두 사람에 대한 것이다. 늘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을 고용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어 성공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왔다. 리츠칼튼호텔 총지배인은 25년 전 도어맨으로 시작해서 지금 위치까지 올라왔다.”</p>
<p>▲<b>리만탓</b>(李文達) 홍콩 이금기유한공사(1888년 설립) 명예회장(2013년 4월 13일자)</p>
<p>“최고경영자가 되기 위해선 이혼을 하거나 바람을 피워선 안 된다. 이를 어길 경우 가족위원회 위원 자격을 박탈한다. 회사 역시 하나의 큰 가족이기 때문에 아버지인 최고경영자가 도덕적으로 깨끗해야 잘 돌아간다.”</p>
<p>▲<b>마르쿠스 발렌베리</b>(Wallenberg) 스웨덴 발렌베리그룹(1856년 설립) 회장(2010년 11월 13일자)</p>
<p>“세대마다 사업에 관심이 있고, 또 열정적으로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 후손이 있었다. 선대(先代)가 사업을 확장하고 발전시켜 나가면서 핵심 경영진과 이사회 멤버를 잘 찾아냈다. 그들은 결코 독단적으로 일하지 않았다.”</p>
<p><b>Pioneer: 한발 앞서 미래를 준비</b></p>
<p>▲<b>유시 필카넨</b>(Pylkk?nen) 영국 크리스티(1766년 설립) 최고경영자(2016년 6월 18일자)</p>
<p>“크리스티는 와인 경매도 최초로 실시했다. 경쟁자를 경매 업체가 아닌 와인 거래상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다각화할 수 있던 것이다. 경쟁자를 다시 설정해 새로운 시장을 찾아내는 크리스티의 전략은 시간을 초월해 유효하다고 생각한다.”</p>
<p>▲<b>카리 카우니스칸가스</b>(Kauniskangas) 핀란드 피스카스그룹(1649년 설립) 회장(2016년 1월 16일자)</p>
<p>“그룹의 모태인 피스카스가 1600년대에 철제 농기구를 만들다가 시간이 흘러 소비재 회사로 바뀐 것은 커다란 변화였다. 현재 큰 비중을 차지하는 리빙 사업은 2007년에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리빙 회사들을 인수해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쌓아가고 있다.”</p>
<p>▲<b>카를 루트비히 클레이</b>(Kley) 독일 머크(1891년 설립) 회장(2011년 2월 26일자)</p>
<p>“머크의 300년 역사를 보면 대략 50년마다 위기가 있었다. 두 번의 전쟁과 다섯 번의 통화 개혁을 거쳤다. 머크라는 회사 역시 다섯 번을 매번 새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p>
<p><b>Professionalism: 흔들리지 않는 전통과 원칙</b></p>
<p>▲<b>질도 제냐</b>(Zegna) 이탈리아 에르메네질도제냐(1910년 설립) 회장(2015년 1월 10일자)</p>
<p>“제냐는 처음부터 끝까지 옷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 직접 개입한다. 양털 목장을 짓고, 양털을 뽑고, 원단을 짜고, 이것을 재단해서 정장을 만든다. 그 어떤 회사도 우리와 같은 모델을 택하지 않았다. 1991년 명품 업체 중 최초로 중국에 진출했는데 거기서도 물류, 배송, 매장 서비스 모두를 직접 통제했다.”</p>
<p>▲<b>칼레 흐비트 닐센</b>(Nielsen) 덴마크 뱅앤올룹슨(1925년 설립) 최고경영자(2008년 10월 11일자)</p>
<p>“최첨단 기술은 분명 매력이 있다. 하지만 불안정한 측면이 있다. 아무리 최신 기술이라고 하더라도 안정적이지 않다면 진정한 기술이 아니다. 소비자가 기대하는 수준에 맞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서두르지 않는다. 기술이 검증될 때까지 기다린다.”</p>
<p>▲<b>피에로 안티노리</b>(Antinori) 이탈리아 안티노리(1385년 설립) 사주(2010년 2월 27일자)</p>
<p>“어느 한 해 빈티지가 나쁘면 실망해 포기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이것이 우리 사업의 특성이라 생각하며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10년 후를 생각한다. 이는 증시에 상장된 기업들은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그들의 시각으로 보면 우리 사업은 불가능하다.”</p>
</div>
</div>
</article>
</div>
<p>[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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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장 차림에 춤추고 노래하고 농구도…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리더십 극대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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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admin]]></dc:creator>
		<pubDate>Wed, 21 Sep 2016 01:36:21 +0000</pubDate>
				<category><![CDATA[Business and Politics]]></category>
		<category><![CDATA[Leadership]]></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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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이코노미조선: 리더의 패션]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이후 가장 옷 잘 입는 정치인. 권위적인 정치 슈트를 벗어 던지고 ‘노타이’와 ‘노재킷’ 룩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최초의 대통령. 반듯함보다 흐트러짐을 내세운 오바마의 슈트 정치는 21세기 글로벌 리더 스타일의 빅 트렌드로 기록된다. 오바마의 흐트러짐은 대충 걸쳐 입은 듯하지만, 사실 패션계의 ‘에포트리스 시크(effortless chic·무신경하게 입은 듯 흐트러진 스타일링)’처럼 [&#82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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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div id="news_body_id" class="news_body fontset_mal">
<h3 class="news_subtitle">[이코노미조선: 리더의 패션]</h3>
<div class="par">
<p>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이후 가장 옷 잘 입는 정치인. 권위적인 정치 슈트를 벗어 던지고 ‘노타이’와 ‘노재킷’ 룩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최초의 대통령. 반듯함보다 흐트러짐을 내세운 오바마의 슈트 정치는 21세기 글로벌 리더 스타일의 빅 트렌드로 기록된다. 오바마의 흐트러짐은 대충 걸쳐 입은 듯하지만, 사실 패션계의 ‘에포트리스 시크(effortless chic·무신경하게 입은 듯 흐트러진 스타일링)’처럼 잘 계산된 스타일링이다. 2017년 1월 임기 종료를 앞두고 오바마식 ‘에포트리스 슈트 정치’가 다시 재조명되고 있다.</p>
</div>
<div class="news_imgbox">
<figure><img decoding="async"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8/31/2016083102173_0.jpg" alt="" /><figcaption>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연합뉴스</figcaption></figure>
</div>
<div class="par">
<p>2007년 9월 27일,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46세의 젊은 오바마가 미국 뉴욕 워싱턴스퀘어파크에 도착했다. 이날 공원 역사상 처음으로 2만여명의 군중이 몰려들었다. 그들 대부분은 뉴욕대와 뉴욕주립대의 학생들 그리고 맨해튼의 젊은이들이었다. 이렇게 많은 청년들을 한자리에 집합시킨 대선 후보는 그때까지 없었다. 미국 청년들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서 그 유명한 ‘체인지(Change)’ 캠페인 연설을 남긴 순간, 오바마는 재킷 없이 하얀 드레스 셔츠만을 입고 서있었다. 타이 없이 셔츠의 첫 단추는 풀어헤쳐져 있었고 소매도 걷어 올려져 있었다. 리더 스타일의 아이콘이자 교과서가 된 오바마의 ‘노재킷, 노타이 룩’이 명연설과 함께, 전 세계 공중파와 SNS를 통해 퍼져 나갔다.</p>
<h4>자기만의 규칙 철저히 지켜</h4>
</div>
<div class="news_imgbox under600">
<figure><img decoding="async"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8/31/2016083102173_1.jpg" alt="" /><figcaption>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노재킷 룩’과 자유분방해 보이는‘노타이 룩’은 오바마의 대표 스타일이다. /블룸버그</figcaption></figure>
</div>
<div class="par">
<p>9년 가까이 흐른 지난 5월, 어느덧 55세가 된 오바마 대통령은 베트남 방문 중 ‘동남아 청년지도자 이니셔티브(YSEALI)’ 소속 청년 지도자 800명을 만났다. 이날 오바마는 베트남의 여성 래퍼 수보이(Suboi)의 즉흥 랩에 맞춰 비트 박스를 선보여 뜨거운 환호를 얻어냈다. 베트남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날, 오바마는 비둘기 빛이 감도는 연한 블루 셔츠와 블루 타이를 매치시킨 패션이었다. 타이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살짝 느슨했고 소매는 걷어 올려져 있었다. 오바마의 ‘노재킷 룩’이 다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드레스 셔츠의 소매를 걷어 올린 ‘노재킷 룩’과 타이를 매지 않고 단추를 풀어 헤친 ‘노타이룩’은 오바마의 대표 스타일이다.</p>
<p>소매를 걷어 올림은 성실함과 열정을, 노타이는 권위를 내려놓고 행동하는 일꾼이 되겠다는 의지를 대변한다. 풀어진 셔츠 단추는 격식 없는 대화와 오픈 마인드를 상징한다. 언제든지 대화하고 질문에 답할 준비가 돼 있단 뜻이다. 패션의 ‘쿨’하고 ‘시크’함을 정치적 신념으로 세련되게 전환시킨, 정치사와 패션사에 모두 남을 성공적인 패션 정치학(fashion politics)이다.</p>
<p>오바마는 미국의 클래식 슈트 브랜드 ‘하트 샤프너 막스’의 골드 트럼피터 라인의 팬으로 알려져 있다. 수천달러 하는 이탈리안 명품 카날리 슈트를 입을 때도 있지만, 주로 500~700달러대의 실용적인 하트 샤프너 막스 슈트에 미국 대통령의 구두라 불리는 존스톤앤머피의 클래식한 레이스업 슈즈(lace-up shoes·끈으로 묶어 신는 남성 구두의 기본)를 신는다.</p>
</div>
<div class="news_imgbox heightlong right">
<figure><img decoding="async"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8/31/2016083102173_2.jpg" alt="" /><figcaption>최근 미국 남성지 &#8216;GQ&#8217;는 오바마를 존 F. 케네디 이후 가장 스타일리시한 대통령으로 꼽았다. /블룸버그</figcaption></figure>
</div>
<div class="par">
<p>특히 오바마는 자기만의 슈트 스타일링 철칙을 지니고 있기로 유명하다. 먼저, 슈트는 ‘투 버튼 싱글 브레스티드 재킷(홑 여밈에 한 줄로 두개의 단추가 달린 클래식 재킷)을 고집한다. 재임 이후 베이지색 슈트를 시도하는 등 가끔 새로운 컬러로 모두를 놀라게 했지만, 짙은 감색과 회색, 검정을 고수하는 편이다.</p>
<p>특히 유명한 건 오바마의 넥타이 매듭법이다. 그는 젊은 감각의 ‘포 인 핸드(four in hand·Y자형) 매듭’에 넥타이 중간의 주름 ‘딤플(dimple·넥타이 중앙을 오목하게 만든 모양새가 보조개 같아 붙여짐)’을 강조하는 ‘딤플 스타일’을 유행시켰다. ‘딤플’이 곧 ‘오바마 매듭’으로 불릴 정도다. 흐트러짐에도 규칙이 있다. 먼저 ‘노재킷 룩’은 대충 걷어 올린 듯하지만,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위치는 한결같다. 소매 끝단을 두 번 접어 올려 조금 위로 당겨, 손목과 팔꿈치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게 한다.</p>
<p>‘노타이 룩’에선 셔츠의 첫 단추만을 풀며 투 버튼 싱글 브레스티드 재킷의 첫번째 단추만 잠근다. 또 멋쟁이답게 의자에 앉을 때는 단추를 모두 푸는 것을 잊지 않는다. 단추를 풀지 않으면 재킷이 구겨지며 앉아 있는 실루엣 전체를 망가뜨린다. 슈트 애티튜드(태도)의 상식이지만, 흔히 저지르는 실수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오바마는 ‘핏’에 엄격하다. 지나치게 여유롭지도 조이지도 않으면서 목, 어깨, 가슴의 핏이 잘 맞아떨어질 때, 걷어 올린 소매나 풀어 헤친 단추도 멋져 보인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의 슬림 슈트핏은 최고라는 찬사를 받곤 하는데, 최근 미국 남성지 &lt;GQ&gt;는 ‘오바마가 존 F. 케네디 이후 가장 스타일리시한 대통령인 8가지 이유’ 중 첫 번째로 ‘슈트핏’을 꼽았다.</p>
<h4>노타이·노재킷 룩으로 대중 사로잡아</h4>
</div>
<div class="news_imgbox heightlong">
<figure><img decoding="async"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8/31/2016083102173_3.jpg" alt="" /></figure>
</div>
<div class="par">
<p>흐트러짐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오바마의 슈트 정치는 세계 리더의 스타일을 뒤바꿀 만큼 강력했다. 이제 각국 정상들이 노타이 룩으로 함께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는 일이 흔해졌다. 보수적인 패션을 고수하는 시진핑조차 백악관 방문 시 노타이 룩으로 오바마와 산책 회담을 가졌을 정도다.</p>
<p>그러나 오바마가 슈트를 입는 방식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슈트 애티튜드다. 오바마의 슈트 퍼포먼스는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만큼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그중 유명한 에피소드는 오바마가 미국 인기 토크쇼인 ‘엘렌쇼’에 출연해 슈트를 입은 채 엘렌과 나란히 춤을 춘 장면이다. 아르헨티나 방문 때는 즉흥적으로 아르헨티나의 탱고 댄서와 멋진 댄스를 선보였다. 베트남에선 청년들 앞에서 비트 박스를 보여줬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각 나라와 세대의 문화를 지지하거나 존중하는 오바마식 슈트 정치다.</p>
<p>스포츠 광으로 유명한 오바마는 슈트를 입고 스포츠 선수들처럼 역동적으로 활동한다. 잠시 망중한을 즐기는 중에는 백악관 녹색 잔디에서 새하얀 드레스 셔츠의 소매를 걷어 올린 채, 자신의 애완견 퍼스트 독(first dog)과 뛰어다니며 럭비공을 던지고, 백악관 직원들과 농구를 즐긴다. 소매를 걷어 올린 노타이 룩으로 테니스를 치기도 한다. 슈트를 활동복처럼 입고 활동하는 그의 자유로움과 인간적인 면모가 곧 신의 한 수다. 세계를 런웨이로 활보하는 오바마의 패션쇼도 피날레에 다다랐다. 그가 백악관에 작별을 고하고 백스테이지로 사라진 후에도, 오바마의 패션은 영원한 리더의 스타일로 남을 것이다.</p>
<p><a href="http://economychosun.com/special/special_view.php?boardName=C22&amp;t_num=10348&amp;myscrap=">&lt;본 기사는 이코노미조선 164호에서 발췌했습니다.&gt;</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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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새 시대 경영자 자질 4가지 키워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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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admin]]></dc:creator>
		<pubDate>Wed, 21 Sep 2016 01:33:27 +0000</pubDate>
				<category><![CDATA[Business and Politics]]></category>
		<category><![CDATA[Leadership]]></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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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위클리비즈, 1년간 세계 7위권 경영대학원 학장등 석학 11명 인터뷰] 경영 환경이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저성장과 저소비, 높은 실업률이 일상화된 &#8216;뉴 노멀&#8217;이 거시경제의 새로운 질서로 자리 잡았다. 인터넷 보급과 맞물린 IT 혁신으로 온라인 공간과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사업 모델이 속속 등장하며 산업 지형도가 달라지고 있다. 노령화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82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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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h3 class="news_subtitle">위클리비즈, 1년간 세계 7위권 경영대학원 학장등 석학 11명 인터뷰]</h3>
<div class="par">
<p>경영 환경이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저성장과 저소비, 높은 실업률이 일상화된 &#8216;뉴 노멀&#8217;이 거시경제의 새로운 질서로 자리 잡았다. 인터넷 보급과 맞물린 IT 혁신으로 온라인 공간과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사업 모델이 속속 등장하며 산업 지형도가 달라지고 있다. 노령화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세대 갈등 등 인구구조를 둘러싼 변화도 벌어지고 있다.</p>
<p>자연스럽게 이상적인 경영인의 요건도 달라졌고 새로운 경영인을 길러내는 경영대학원(MBA)도 이런 상황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경영대학 순위도 달라지고 있다. 기술 기업이 떠오르면서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실리콘밸리와 가까운 스탠퍼드대와 UC버클리대 등이 부상하고 있고, 학문 간 통섭과 인재 다양성을 중시하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프랑스 인시아드(INSEAD), 스페인 이에세(IESE), 스위스 IMD 등이 전통적인 미국 명문대 경영대학원들을 제쳤다.</p>
<p>위클리비즈는 앞으로 경영에서 어떤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알아보기 위해 지난 1년 동안 세계 7위권 경영대학원 학장 중 4명을 포함, 총 11명의 세계 주요 경영대학원장을 만났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8216;경영자에게 앞으로 필요한 자질&#8217;을 키워드로 정리했다.</p>
<p>신기술을 활용한 사업을 구상하는 데 필요한 &#8216;뉴 하드스킬&#8217;, 기업 구성원 스스로 혁신을 이뤄내도록 비전을 제시하는 &#8216;동기부여 능력&#8217;, 좋은 인재를 끌어들이고 조직 내 갈등을 줄이는 &#8216;수평적 조직 문화&#8217;, 기업이 사회와 소통하기 위한 &#8216;배려와 진정성의 경영&#8217; 등 네 가지이다.</p>
</div>
<div class="news_imgbox def">
<figure><span class="zoom_img"><a href="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8/12/2016081202276.html#"><img decoding="async"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8/12/2016081202211_0.jpg" alt="" /><em>이미지 크게보기</em></a></span><figcaption>왼쪽부터 일리안 미호브 인시아드 학장, 니틴 노리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장, 제프리 개릿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장, 글렌 하버드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장, 리치 리옹 UC버클리대 경영대학원장, 피터블레어 뉴욕대 경영대학원장, 피터 투파노 옥스퍼드대 경영대학원장. /송원영 기자</figcaption></figure>
</div>
<div class="par">
<p><strong><span style="font-size: x-large;">①新기술을 이해하는 &#8216;뉴 하드스킬&#8217;</span></strong></p>
<p>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은 농업혁명, 기계화와 대량생산에 따른 산업혁명, 디지털혁명에 이은 &#8216;제4차 산업혁명&#8217;이 진행 중이라고 분석했다. 제조업과 첨단 과학기술, 정보통신기술(ICT)이 융합되면서 앞선 산업혁명 때와 같이 모든 경제의 근간이 달라질 것이라고 분석한다. 지식의 생성과 활용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8216;지식 기반 경제&#8217;다.</p>
<p>제프리 개릿 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학장은 이런 환경에서 비즈니스 리더에게 꼭 필요한 자질로 &#8216;뉴 하드스킬&#8217;을 꼽았다. 재무·회계·마케팅 같은 경영 지식을 &#8216;하드스킬&#8217;이라 하는데, 이보다 첨단 기술에 대한 지식인 &#8216;뉴 하드스킬&#8217;이 더 중요해졌다는 뜻이다.</p>
<p>&#8220;과거의 비즈니스 환경과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첨단 기술이 등장하면서 혁신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좋은 비즈니스 리더가 꼭 괴짜 과학자일 필요는 없지만,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고 이 중에서 기업의 성장에 필요한 것들을 찾아내 적용할 줄 알 정도의 지식을 갖춰야 합니다.&#8221;</p>
<p>자신의 분야를 넘어서 다른 학문의 전문가에게 손을 내미는 능력도 중요한 자질로 꼽힌다. 지식 기반 경제로 옮아가면서 재무나 생산 관리보다 혁신이 기업의 성과를 좌우하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경영 전문가들은 공학도 출신이 아니더라도 여러 분야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업무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p>
</div>
<div class="news_imgbox heightlong">
<figure><img decoding="async"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8/12/2016081202211_1.jpg" alt="" /><figcaption>/일러스트=정인성 기자</figcaption></figure>
</div>
<div class="par">
<p><strong><span style="font-size: x-large;">②혁신 이끄는 &#8216;동기부여형 리더&#8217;</span></strong></p>
<p>경영학계는 &#8216;똑똑한 1인 보스 체제&#8217;보다 &#8216;혁신적인 조직&#8217;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소비자의 입맛이 급변하고 기술이 빠르게 등장하고 사라지는 상황에서는 경영자 한 사람이 모든 혁신을 주도할 수 없다는 점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세계경제의 성장기를 주도해왔던 &#8216;카리스마형 리더&#8217;가 더는 좋은 리더로 불리기 힘들어졌다.</p>
<p>니틴 노리아 미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장은 조직에 영감을 주고 인재들의 도전 의식을 자극하는 리더가 중요하다고 봤다. 비전을 제시하고 조직원들이 능동적으로 따라오게 만드는 리더가 있어야 기업이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최근 떠오르는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인들은 &#8216;내가 세상을 좋게 만든다&#8217;는 적극적인 비전으로 무장하고 있다.</p>
<p>&#8220;리더가 비전을 제시한 후 조직원들이 스스로 따라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능한 인재들의 도전 의식을 자극해야 합니다. 목표를 명확하게 세우고 달성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해야 합니다. 지금 같은 시대에 망설임은 사치입니다. 구성원 하나하나가 책임 의식을 갖고 움직여야 합니다.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8221;</p>
<p>혁신을 추구하는 방식도 그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 리더 혼자서 전략을 고민하기보다 뚜렷한 목표를 제시하고 직원들 스스로 혁신을 이뤄내도록 자극하고 적절한 환경을 조성하라는 것이다. 최근 리더십 전문가인 린다 힐 미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 같은 리더십에 &#8216;혁신 설계자&#8217;라는 이름을 붙였다. 경영학계에서는 조직원들이 작은 혁신을 이루는 조직 문화를 &#8216;혁신 생태계&#8217;라고 부르고, &#8216;티밍(teaming·부서나 조직이 다른 인재들 간의 창조적인 협업)&#8217;을 이뤄낼 때 혁신이 잘 일어난다고 본다.</p>
</div>
<div class="news_imgbox def">
<figure><span class="zoom_img"><a href="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8/12/2016081202276.html#"><img decoding="async"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8/12/2016081202211_2.jpg" alt="" /><em>이미지 크게보기</em></a></span><figcaption>/조선일보 DB</figcaption></figure>
</div>
<div class="par">
<p><strong><span style="font-size: x-large;">③新세대·외부 인재 끌어들이는 &#8216;수평적 조직 문화&#8217;</span></strong></p>
<p>조직원들을 매끄럽게 아우르고 좋은 인재를 끌어들이는 것도 기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필수적인 능력으로 꼽힌다. 변화하는 경제 상황에 따라 기업이 끊임없이 계속 변신하는 과정에서 조직이 흔들리고 인재 이탈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의 수직적인 기업 문화가 부담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개방적이고 직원 개개인의 특성을 존중하는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수평적인 조직 문화가 최근 주목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p>
<p>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집계한 2016년 MBA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프랑스 인시아드(INSEAD)는 프랑스,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캠퍼스를 운영한다. 교육과정에서도 다양한 성별, 국적, 연령의 학생들 간 교류를 중시한다.</p>
<p>일리안 미호브 인시아드 학장은 &#8220;최근 경영 트렌드의 큰 화두는 인재의 포용성과 다양성&#8221;이라며 &#8220;다양한 사람과 환경에 노출되면서 내가 가진 사고방식과 전혀 다른 접근법을 배우고, 또 내가 가진 편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반성하게 된다&#8221;고 말했다.</p>
<p>최근 부각되는 기업 내 갈등은 세대 갈등이다. 현재 기업의 상층부를 구성한 세대는 일과 가정이라는 선택지를 기반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짙은 반면, 최근 입사한 젊은 세대는 현재를 얼마나 충실하게 살고 있는지,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나 얼마나 흥미로운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고속성장기가 끝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과거 세대처럼 &#8216;일이 나의 전부&#8217;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직이나 &#8216;투잡(two jobs)&#8217;이 흔하다.</p>
<p>리치 리옹 미 UC버클리대 하스경영대학원장은 엄격한 위계질서 대신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봤다. 그는 &#8220;시대·시점마다 적합한 리더의 유형이 다르다&#8221;며 &#8220;앞으로는 혼자만의 노력으로 뛰어난 성과를 내기 어려워질 것&#8221;이라고 말했다.</p>
<p>경영 전문가들은 경영자들이 신세대의 사고방식과 일에 대한 태도를 이해하고 인정해야 하며, 모든 직원과 함께 새로운 조직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p>
</div>
<div class="news_imgbox def">
<figure><img decoding="async"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8/12/2016081202211_3.jpg" alt="" /><figcaption>/일러스트=이철원 기자</figcaption></figure>
</div>
<div class="par">
<p><strong><span style="font-size: x-large;">④新 가치… &#8216;배려와 진정성의 경영&#8217;</span></strong></p>
<p>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경영자의 도덕성도 새로운 관심사다. 폴크스바겐의 배기가스량 조작 문제나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스캔들 같은 사고를 수습하는 소극적인 범위의 사회적 책임에서, 친환경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수익의 일정 부분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적극적인 방향으로 확대되는 분위기다.</p>
<p>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은 금융 위기의 반성으로 교수들을 모아 이전까지의 MBA 교육에 어떤 문제가 있었고 앞으로 어떤 리더십을 배양해야 할지 연구했다. 이때 내려진 결론은 &#8216;사회적 책임과 배려를 강조하는 리더십&#8217;이었다. 당시 하버드대에 몸을 담았던 피터 투파노 영국 옥스퍼드대 사이드경영대학원장은 &#8220;(이전까지의 MBA는) 예비 기업인들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놓친 부분,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8221;고 말했다.</p>
<p>&#8220;예를 들면 장기적으로 위기에 대응할 능력을 가르치지 못했고 전체를 보는 사고를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기업이나 제품을 국가,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일부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는 리더들이 근시안적이고 미시적으로 기업을 이끄는 결과를 낳았습니다.&#8221;</p>
<p>이 때문에 사이드경영대학원은 효율성보다 인류와 사회에 대한 책임감, 배려와 조화를 중시하는 리더십에 무게를 둔다. 교육과정에도 철학, 역사학 등 인문학적인 소양을 기르는 수업이 많다.</p>
<p>&#8216;진정성(authenticity)&#8217;이나 사회적 기업과의 연계가 기업의 실적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주장들도 힘을 얻고 있다. 진정성이란 &#8216;인위적이지 않으면서도 일관된 가치를 추구하고 사회적·도덕적 문제에 깨어 있는 것&#8217;으로, 글렌 캐럴 미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고안한 개념이다. 현대 소비자들에겐 본인이 중시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상품을 선호하는 &#8216;가치 소비&#8217;의 경향이 있어, 유명 상표나 대기업의 제품이 아니더라도 진정성 있는 것에 끌린다는 분석이다.</p>
</div>
<p>[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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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220;카리스마형 리더 옆에는 예스맨만 많아… 조직 오래 가려면 팀플레이 리더십 필요&#822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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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admin]]></dc:creator>
		<pubDate>Wed, 21 Sep 2016 01:31:23 +0000</pubDate>
				<category><![CDATA[Business and Politics]]></category>
		<category><![CDATA[Leadership]]></category>
		<category><![CDATA[Opinio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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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이코노미조선:맨프레드 케츠 데 브리스 인시아드(INSEAD) 교수] “위기 때 주도적으로 조직을 이끌어가는 카리스마형 리더를 매력적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자기주장이 워낙 강하고 스스로를 우상화할 줄 알기 때문이죠. 그러나 거기에 속아선 안 됩니다.”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의 맨프레드 케츠데 브리스(Manfred Kets De Vries) 교수는 인간의 심리와 행동 분석에 오랜 기간 매진해 온 리더십 분야의 권위자다. 인시아드의 글로벌 리더십 센터 [&#8230;]</p>
<p>The post <a rel="nofollow" href="https://blog.jasonshin.com/%ec%b9%b4%eb%a6%ac%ec%8a%a4%eb%a7%88%ed%98%95-%eb%a6%ac%eb%8d%94-%ec%98%86%ec%97%90%eb%8a%94-%ec%98%88%ec%8a%a4%eb%a7%a8%eb%a7%8c-%eb%a7%8e%ec%95%84-%ec%a1%b0%ec%a7%81-%ec%98%a4%eb%9e%98/">&#8220;카리스마형 리더 옆에는 예스맨만 많아… 조직 오래 가려면 팀플레이 리더십 필요&#8221;</a> appeared first on <a rel="nofollow" href="https://blog.jasonshin.com">Blog of Jason Shin</a>.</p>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id="news_body_id" class="news_body fontset_mal">
<h3 class="news_subtitle">[이코노미조선:맨프레드 케츠 데 브리스 인시아드(INSEAD) 교수]</h3>
<div class="par">
<p>“위기 때 주도적으로 조직을 이끌어가는 카리스마형 리더를 매력적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자기주장이 워낙 강하고 스스로를 우상화할 줄 알기 때문이죠. 그러나 거기에 속아선 안 됩니다.”</p>
<p>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의 맨프레드 케츠데 브리스(Manfred Kets De Vries) 교수는 인간의 심리와 행동 분석에 오랜 기간 매진해 온 리더십 분야의 권위자다. 인시아드의 글로벌 리더십 센터 창립자로, 인시아드 최고경영자 훈련 프로그램을 총괄한다. 그는 최근 여러 칼럼을 통해 ‘우두머리 수컷(alpha male)’ 타입 리더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공감형(empathic)’ 리더십의 시대를 알렸다. 데 브리스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쉼 없이 변화가 일어나는 환경 때문에 명확한 전략이 필요한 이 시대에 공감형 리더가 더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p>
<p>프랑스 자택에서 전화를 받은 데 브리스 교수의 목소리는 나즈막했지만, ‘카리스마’란 단어만 나오면 말이 빨라지고 목소리가 커졌다. ‘카리스마형 리더의 성공이란 사람들의 착각으로 만들어진 환상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p>
<p>데 브리스 교수는 “카리스마형 리더 곁에는 진실한 조언 대신 그의 주장에 맞장구만 쳐주는 예스맨(Yesman)만 남을 위험이 크다”면서 “혼자 생각하고 행동하는 리더보다는 함께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위험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조언을 주고받는 ‘팀플레이어’야말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리더”라고 강조했다.</p>
</div>
<div class="news_imgbox heightlong">
<figure><img decoding="async"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8/18/2016081801379_0.jpg" alt="" /><figcaption>데 브리스 교수는 아마존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8220;베조스처럼 천재로 추앙받지만 주변 사람과 공을 나누지 않는 리더의 조직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게 개인적인 생각&#8221;이라고 말했다. /맨프레드 케츠 데 브리스 제공</figcaption></figure>
</div>
<div class="par">
<p><strong>카리스마형 리더가 조직에 위험한 이유는 무엇인가요.</strong></p>
<p>“나는 ‘우두머리 수컷’ 타입의 리더라고 했는데, 사실 이런 타입에 끌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인간의 속성을 자극하기 때문이죠. 이런 리더는 지칠줄 모르는 에너지, 자신감, 투지를 지닌 것이 특징입니다. 위기 속에서는 좋은 성과를 내는 편이죠. 조직에 대한 책임감도 큽니다. 그렇지만 그만큼 자만심에 빠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거죠. 이런 사람들에게 막대한 권한을 쥐어 주면 어떻게 될까요. 조직 전체가 리더의 그릇된 판단 때문에 수렁에 빠지는 겁니다. 나는 모든 조직이 이런 카리스마형 리더의 탄생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에게 도취된 강한 리더에게 너무 권한을 몰아주지 않도록 말이죠.”</p>
<p><strong>과거, 많은 카리스마형 리더들이 좋은 성과를 내지 않았나요.</strong></p>
<p>“카리스마형 리더의 성과란 사람들의 착각과 환상이 만들어낸 신화에 불과합니다. 단기간에 눈에 띄는 성과를 냈을지 모르지만 재임기간을 살펴보면 대부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p>
<p>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를 대표적인 우두머리 수컷형으로 꼽았는데, 순항 중이지 않나요.</p>
<p>“아무리 좋은 실적을 내고 혁신을 이루더라도 그를 좋은 리더십의 표본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독재형 혁신가가 이끄는 조직에서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나는 성과를 위해 사람을 도구로 여기는 리더 곁에는 똑같이 계산적인 사람만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그 직원들도 그의 모험에 동참하지만, ‘이 사람 곁에서 어느 정도 사업이 궤도에 올라 성과가 나오면 돈을 잔뜩 받고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할 겁니다. 이런 마음으로 사람이 모여 있는 조직에는 건강한 기업문화가 자리잡을 수가 없습니다.”</p>
</div>
<div class="news_imgbox">
<figure><img decoding="async"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8/18/2016081801379_1.jpg" alt="" /><figcaption>영화 &#8216;예스맨&#8217;의 한 장면. /조선일보 DB</figcaption></figure>
</div>
<div class="ext_summary">
<blockquote><p>카리스마형 리더는<br />
단기적인 성과를 냈지만<br />
장기적인 성과 내기 힘들어</p>
<p>독재형 혁신가에게는<br />
건강한 기업문화 형성되기 힘들어</p>
<p>리더는<br />
잘 말하고 잘 들어야<br />
조직원에게<br />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p></blockquote>
</div>
<div class="par">
<p><strong>지금은 강한 추진력보다도 공감 능력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strong></p>
<p>“조직 구조가 과거와 많이 달라졌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조직은 관계를 기반으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협력해서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의 경우, 미국·독일·홍콩·인도 등 전 세계에 있는 사무소의 직원들이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수시로 이메일을 보내 연락하고 소통하며 팀프로젝트로 일합니다. 이럴 때 상대방의 상황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거나 상상할 줄 아는 능력이 없다면 일이 진행될 수 있을까요. 간단한 의사소통부터 꼬일 겁니다. 이런 팀들로 이뤄진 조직을 이끄는 CEO에게 공감 능력은 필수죠.”</p>
<p><strong>그렇다면 이 시대에 맞는 리더십은 어떤 리더십인가요.</strong></p>
<p>“사람들은 ‘남성적’ ‘여성적’ 리더십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시대는 ‘개인’의 리더십이 아닌 ‘팀워크를 이끄는 리더십’의 시대라는 겁니다. 너무나 변화가 심해서 혼자만의 재능으로는 시대를 버텨나가기 어렵습니다. 진실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둬야 하고, 그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오래가는 기업을 이끌 수 있습니다.”</p>
<p><strong>그런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strong></p>
<p>“잘 말하고, 잘 듣는 겁니다. 리더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CEO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에는 조직원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단결할 수 있는 사명을 부여하는 CEO가 필요합니다. 앞길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그 길로 갈지 이야기하는 CEO의 말에서 희망을 찾죠. 불안해 하는 조직원에게 간단한 말로 분명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경청하는 자질입니다. CEO가 방향을 잘못잡을 수도 있고, 방향을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함께 가는 조직원들의 용기있는 조언입니다. 누구나 문제를 발견하면 곧바로 지적하고 용기 있게 CEO에게 직언할 수 있는 기업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직원들의 조언이 CEO에게 분명한 영향력을 가진다는 확신을 줘야 하죠. 말은 분명하며 간결하게 하고, 전할 메시지는 반복해서 각인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남의 말에는 귀를 열고 잘 듣는 것이 이 시대의 CEO에게 필요한 자질입니다.”</p>
</div>
<div class="news_imgbox">
<figure><img decoding="async"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8/18/2016081801379_2.jpg" alt="" /><figcaption>/일러스트=김성규 기자</figcaption></figure>
</div>
<div class="par">
<p><strong>소통하는 조직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strong></p>
<p>“내 수업을 들으러 오면 됩니다(웃음). 좀 전에 말했듯 ‘잘 듣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보통 CEO나 리더들은 듣기보다 말하는 데 더 익숙합니다. 하지만 CEO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생각입니다. 지금 같은 글로벌 시대에는 여러 문화권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이 한데 뒤섞여 일합니다. 다른 성장 배경과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에게서 솔직한 이야기를 끌어내려면 그 배경을 이해하고 마음을 상상할 수 있는 감성적인 접근이 필요하죠. 서로의 마음을 읽고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조직이라야 건강한 기업 문화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p>
<p><strong>CEO가 실제 상황을 못본 채 소통을 잘 하고 있다고 착각할 수도 있지 않나요.</strong></p>
<p>“물론입니다. 특히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좀 더 이상화하고 최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사태를 예방하려면 주변에 좋은 팀을 꾸리는 게 필수입니다. 결국은 건강한 기업문화, 조직원이 자유롭게 상사에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문화를 어떻게 구축하느냐의 문제로 돌아가는 거죠. 조직원 사이에 아무런 토론이 일어나지 않는 조직에서는 현명한 결정이 나오지 않습니다. 카리스마형 리더가 이끄는 조직이 대표적이죠. CEO의 권위에 눌려있기 때문에, 그의 결정에 누구도 토를 달지 않습니다. 누구도 제동을 걸지 않는 환경에서 CEO는 자만에 빠집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내달리게 되는 거죠.”</p>
</div>
<div class="news_imgbox">
<figure><img decoding="async"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8/18/2016081801379_3.jpg" alt="" /><figcaption>/일러스트=정인성 기자</figcaption></figure>
</div>
<div class="par">
<p><strong>조직원 사이의 세대차이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strong></p>
<p>“나는 세대차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마케팅 업계 사람들이 장삿속으로 만든 용어라고 생각하는데요, 의사 소통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의 깊이가 달라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아무리 디지털 도구로 단련돼 사고법이 다르다고 해도 모든 걸 다 떠나우리는 같은 사람입니다. 상대에게 더 귀 기울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얼마나 하느냐의 차이지, 나이나 세대의 문제가 아닙니다.”</p>
<p><strong>CEO의 소통을 도울 수 있는 외부 장치는 없을까요.</strong></p>
<p>“그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마련한 장치가 이사회죠. 문제는 많은 이사회가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CEO가 내부에서 결정을 다 내린 뒤에야 뒤늦게 행동에 나서죠. 개인적으로는 지금 수준보다 이사회가 CEO의 권한을 더 많이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을 행사하고 CEO와 더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기업을 바른 방향으로 끌고 가는 감시견이 돼야죠.”</p>
<p><a href="http://economychosun.com/special/special_view.php?boardName=C00&amp;t_num=10258&amp;myscrap=">&lt;본 기사는 이코노미조선 162호에서 발췌했습니다&gt;</a></p>
</div>
<div class="ext_embed "><span class="desc">From hero to zero &#8211; when leaders turn bad. /TEDx Talks 유튜브 채널</span></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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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서로 비난하는 직원 똘똘 뭉치게 하려면? 공동의 목표 줘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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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admin]]></dc:creator>
		<pubDate>Sat, 26 Dec 2015 06:48:56 +0000</pubDate>
				<category><![CDATA[Business and Politics]]></category>
		<category><![CDATA[Education]]></category>
		<category><![CDATA[Leadership]]></category>
		<category><![CDATA[Opinio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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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8216;비난 게임&#8217; 저자 벤 대트너 뉴욕대 교수 ▲ 벤 대트너 뉴욕대 교수 140년의 역사를 지닌 일본 전자업체 도시바는 최근 대규모 분식회계로 큰 곤경에 처했다. 지난 8년간 기업 이익 1562억엔(1조4559억원)을 부풀린 것이 드러나면서 최근 10년간 도시바를 이끈 역대 사장 3명이 지난 7월 한날한시에 불명예 퇴진했다. 마이니치 신문 등 일본의 주요 매체들은 경직된 기업 문화와 내부 파벌 [&#8230;]</p>
<p>The post <a rel="nofollow" href="https://blog.jasonshin.com/%ec%84%9c%eb%a1%9c-%eb%b9%84%eb%82%9c%ed%95%98%eb%8a%94-%ec%a7%81%ec%9b%90-%eb%98%98%eb%98%98-%eb%ad%89%ec%b9%98%ea%b2%8c-%ed%95%98%eb%a0%a4%eb%a9%b4-%ea%b3%b5%eb%8f%99%ec%9d%98-%eb%aa%a9%ed%91%9c/">서로 비난하는 직원 똘똘 뭉치게 하려면? 공동의 목표 줘라</a> appeared first on <a rel="nofollow" href="https://blog.jasonshin.com">Blog of Jason Shin</a>.</p>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h3>&#8216;비난 게임&#8217; 저자 벤 대트너 뉴욕대 교수</h3>
<dl class="left_img">
<dd><img decoding="async" loading="lazy" id="artImg0"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512/25/2015122501415_0.jpg" alt="벤 대트너 뉴욕대 교수" width="240" height="317" /></dd>
<dt>▲ 벤 대트너 뉴욕대 교수</dt>
</dl>
<p>140년의 역사를 지닌 일본 전자업체 도시바는 최근 대규모 분식회계로 큰 곤경에 처했다. 지난 8년간 기업 이익 1562억엔(1조4559억원)을 부풀린 것이 드러나면서 최근 10년간 도시바를 이끈 역대 사장 3명이 지난 7월 한날한시에 불명예 퇴진했다. 마이니치 신문 등 일본의 주요 매체들은 경직된 기업 문화와 내부 파벌 대립이 이번 사건의 단초가 됐다고 보도했다.</p>
<p>&#8220;사람들은 대부분 비난을 피하고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잘못된 결정을 내립니다. 도시바의 경우 내부 파벌이 존재했습니다. 상대 파벌에게 비난받지 않고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실적을 부풀리던 것이 대규모 분식회계로 이어진 것입니다. 비합리적인 결정이 누적되면 기업이 망할 수도 있습니다.&#8221;</p>
<p>벤 대트너(Dattner·47) 뉴욕대 경영학과 교수는 비난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서로를 비난하는 &#8216;비난 게임&#8217;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조직을 와해시키고 회사를 망친다고 지적했다. 대트너 교수는 &#8220;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질 경우 개인은 물론 기업에 돌아가는 보상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대부분 이를 간과한다&#8221;고 말했다. 눈앞의 이익에 집착한 나머지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비난 게임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p>
<p>벤 대트너 교수가 쓴 책 &#8216;비난 게임(The blame game)&#8217;은 조직 심리학 대가로 잘 알려진 로버트 서튼 스탠퍼드대 교수의 극찬을 받아 화제가 됐다. 대트너 교수는 조직 발전 코칭 전문 회사인 대트너 컨설팅을 만들어, 소규모 스타트업부터 대기업, 정부기관까지 다양한 조직에 조언해 왔다.</p>
<p>―상대방을 비난하는 대신 주어진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결정인데, 왜 비난게임에 몰입하는 것인가요?</p>
<div class="center_img">
<dl>
<dd><img decoding="async" loading="lazy" id="artImg1"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512/25/2015122501415_1.jpg" alt="서로 비난하는 직원 똘똘 뭉치게 하려면? 공동의 목표 줘라" width="480" height="209" /></dd>
<dt>▲ 일러스트=박상훈 기자</dt>
</dl>
</div>
<p>&#8220;타인을 비난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공(功)이란 것은 제한된 자원입니다. 이 제한된 자원을 차지하려 할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더 가지려는 본능을 발휘합니다. 만약 업무 능력으로 인정받을 수 없거나, 업무에 대해 올바른 평가가 이뤄지지 않아 생각했던 것만큼 보상을 받지 못할 경우 사람들은 비합리적인 선택을 합니다. 결국 칭찬에는 인색해지고, 비난에 몰입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8221;</p>
<p>―비난게임이 조직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치명적인 문제점인가요?</p>
<p>&#8220;물론입니다. 도시바도 그랬고 과거엔 닛산 케이스가 있습니다. 카를로스 곤 르노 닛산 회장은 지난 2001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기고한 글에서 닛산의 문제점을 &#8216;비난 문화&#8217;에서 찾았습니다. 그는 기고문에서 회사의 실적이 좋지 않으면 모두 항상 다른 사람의 탓을 했다고 닛산의 문제점을 꼬집었습니다. 곤 회장은 닛산 부임 1년 만에 닛산을 흑자로 전환시킨 인물입니다. 강력한 구조조정을 지휘했던 그는 닛산의 내부 갈등을 심각한 문제로 봤던 것입니다.&#8221;</p>
<p>―닛산은 비난게임에서 어떻게 벗어났나요?</p>
<p>&#8220;서로 비난하던 팀원들에게 공동의 목표를 줬습니다. 곤은 각자 다른 부서, 특히 과거 서로 비난하던 부서의 직원으로 팀 11개를 만들어 공통의 업무 목표, 이를테면 자재비를 20% 줄이라는 식의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새롭게 만든 팀에 상위 목표를 설정하고, 팀 구성원들에게 개인적 책임과 집단에 대한 책임도 같이 부과했습니다. 걸핏하면 다른 부서를 비난하던 직원들은 같은 팀을 이뤄 공동의 목표를 달성해야 했는데, 그 결과 비난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쓰며 헛수고하지 않고 일에 집중하게 됐습니다.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한 동기를 확실히 부여하는 게 중요합니다. 한 집단이 아니라 전체 집단을 이롭게 하는 &#8216;상위의 목표&#8217;를 찾아야 합니다.&#8221;</p>
<p>―조직 내부에서만 비난게임이 벌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 밖에서 비난이 일 경우 기업이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회피하다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지 않나요?</p>
<p>&#8220;그런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일일이 다 언급하기 쉽지 않을 정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업이 비난을 받아들이고, 적절한 방법으로 책임을 진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에 더 득이 된다는 점입니다. 인텔은 지난 1994년 펜티엄 오류 사건에 잘 대처했습니다. 당시 인텔은 컴퓨터의 두뇌라 할 수 있는 펜티엄 마이크로 프로세서 칩 성공에 승부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토머스 나이슬리 린치버그대 교수가 펜티엄 칩이 90억번에 한 번꼴로 반올림 오류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인텔도 결함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인텔은 제품 결함을 알면서도 제품을 판매한 기업이 됐고, 코미디 프로그램의 소재로 사용될 정도로 비난을 받았습니다. 인텔의 주가는 급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CEO였던 앤드루 그로브는 공개 사과를 한 후 4억7500만달러의 비용을 감수하면서 시장에 출하된 칩을 모두 회수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인텔은 1995년 출시 예정인 다음번 칩의 주문량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가 책임을 회피할수록 문제는 점점 더 커집니다. 책임을 감수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한 덕분에 인텔의 브랜드 가치는 오히려 올라갔습니다.&#8221;</p>
<p>―비판을 수용하는 것이 보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납득하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p>
<p>&#8220;미시간 주립대학병원과 일리노이 주립대학병원은 지난 몇 년에 걸쳐 의료 사고에 대한 정보를 완전히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실수를 인정할 뿐 아니라, 자진해서 잘못을 사과하고 적절한 보상을 하고 있습니다. 의료사고 소송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두 병원 모두 의료사고 소송이 크게 감소했습니다. 미시간 주립대학병원에서는 의료 사고에 적극적으로 책임을 인정하기 시작한 후 1년 동안 소송 수가 252건에서 83건으로 줄었습니다. 일리노이 주립대학병원에서 적극적으로 과실을 인정한 37건의 의료 사고 중 소송으로 이어진 경우는 단 1건뿐이었습니다. 놀랍지 않나요?&#8221;</p>
<p>―비난을 감수하고 적절한 책임을 질 때 돌아오는 보상을 명확하게 알 수 있어야 합니다만 과연 그게 가능할지요.</p>
<p>&#8220;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을 실패의 희생양으로 삼지 말고 칭찬해 주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희생양을 만들면 단기적으로 조직의 결속력이 높아지지만, 희생양이 한 명으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많은 리더와 조직이 비난 게임을 하다가 실패의 진짜 원인, 복잡하고 잘 드러나지 않는 것들을 파악하고 개선할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p>
<p>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기업들은 위기에 처하면 임금을 낮추고, 부서를 통폐합합니다. 하지만 경영 전문가들은 일시적 해고가 기업 경쟁력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며 감원 외에도 대안은 많다고 지적합니다. 나중에 필요한 인력을 찾느라 더 많은 비용을 쓰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데 급급하면 문제점을 정확히 찾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기업에 독이 되는 의사 결정을 하게 됩니다.&#8221;</p>
<p>―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거나, 오히려 비판을 하는 사람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는 것 모두 리더십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p>
<p>&#8220;결국 리더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독일의 유명한 로켓 연구자 베르너 폰 브라운의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미국과 소련이 우주개발 경쟁을 벌이던 시절 미국의 우주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미 항공우주국(NASA)은 경쟁이 매우 치열한 조직이었습니다. 엔지니어들은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회피하거나 문제를 감추는 데 급급했습니다. 그때 새로운 탄도미사일이 시험 발사 도중 폭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사고 후 한 젊은 엔지니어가 용기를 내어 민감한 회로 기판 근처에서 나사를 조이다가 불꽃이 튀었고, 그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브라운은 엔지니어에게 해고통지서 대신 샴페인 한 병을 보냈습니다. 브라운은 진실을 감추는 대신 실수를 인정하는 사람을 보상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입니다. 리더의 강력하고 상징적인 행동은 실수에 개방적인 문화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82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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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종교가 된 브랜드의 비밀, 感을 건드렸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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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admin]]></dc:creator>
		<pubDate>Sat, 26 Dec 2015 06:47:07 +0000</pubDate>
				<category><![CDATA[Business and Politics]]></category>
		<category><![CDATA[Education]]></category>
		<category><![CDATA[Leadership]]></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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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Cover Story] 쇼핑학 창시자 마틴 린드스트롬 ▲ 마틴 린드스트롬 해마다 노벨의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한 뇌과학자의 오른쪽 어깨에는 한 입 베어 먹은 흔적이 선명한 사과 문신이 새겨져 있다. 애플 로고다. 그는 &#8220;오래전부터 문신을 하고 있었고, 애플을 굉장히 좋아한다&#8221;며 &#8220;마이크로소프트 로고를 문신으로 새기는 사람은 절대로 없을 것&#8221;이라고 말한다. 애플에는 마치 종교의 &#8216;신도&#8217;를 방불케 하는 일부 충성 [&#8230;]</p>
<p>The post <a rel="nofollow" href="https://blog.jasonshin.com/%ec%a2%85%ea%b5%90%ea%b0%80-%eb%90%9c-%eb%b8%8c%eb%9e%9c%eb%93%9c%ec%9d%98-%eb%b9%84%eb%b0%80-%e6%84%9f%ec%9d%84-%ea%b1%b4%eb%93%9c%eb%a0%b8%eb%8b%a4/">종교가 된 브랜드의 비밀, 感을 건드렸다</a> appeared first on <a rel="nofollow" href="https://blog.jasonshin.com">Blog of Jason Shin</a>.</p>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h3>[Cover Story] 쇼핑학 창시자 마틴 린드스트롬</h3>
<dl class="left_img">
<dd><img decoding="async" loading="lazy" id="artImg0"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512/25/2015122501404_0.jpg" alt="마틴 린드스트롬" width="240" height="353" /></dd>
<dt>▲ 마틴 린드스트롬</dt>
</dl>
<p>해마다 노벨의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한 뇌과학자의 오른쪽 어깨에는 한 입 베어 먹은 흔적이 선명한 사과 문신이 새겨져 있다. 애플 로고다. 그는 &#8220;오래전부터 문신을 하고 있었고, 애플을 굉장히 좋아한다&#8221;며 &#8220;마이크로소프트 로고를 문신으로 새기는 사람은 절대로 없을 것&#8221;이라고 말한다.</p>
<p>애플에는 마치 종교의 &#8216;신도&#8217;를 방불케 하는 일부 충성 고객이 존재한다. 설령 제품이 비싸고 하드웨어 성능이 부족하더라도 모든 분야에서 애플 제품만을 원하는 소비자가 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뿐 아니라 좀더 비싸더라도 이어폰과 마우스, USB 등 부속품도 애플의 제품으로 맞추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나이, 사는 곳, 직업이 다르더라도 애플에 대한 열정 하나로 커뮤니티를 구성하기도 한다. 스티브 잡스의 사망 소식에 전 세계 애플 팬들은 각자의 SNS에 &#8216;RIP 잡스'(Rest In Peace·평화롭게 잠들기를)를 올리는 등 애도 물결을 이어갔다.</p>
<p>&#8216;쇼핑학&#8217;의 창시자인 마틴 린드스트롬(Lindstrom)은 &#8220;성공하는 브랜드는 종교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8221;고 설명했다. 그는 &#8220;할리 데이비슨, 애플, 헬로키티, 디즈니, 레고 등 이름만으로 소비자를 설레게 하는 브랜드를 구매하는 고객들은 단순 소비자라기보다는 철저한 신자에 가깝다&#8221;며 &#8220;어떤 땐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키기까지 하는 브랜드의 브랜딩 전략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8221;고 말했다.</p>
<div class="center_img">
<dl>
<dd><img decoding="async" loading="lazy" id="artImg1"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512/25/2015122501404_1.jpg" alt="[Cover Story] 쇼핑학 창시자 마틴 린드스트롬" width="480" height="697" /></dd>
<dt>▲ Getty Images/멀티비츠</dt>
</dl>
</div>
<p>린드스트롬은 브랜딩 전문가다. 덴마크인인 그는 미국 광고대행사 BBDO의 유럽과 아시아 지사를 설립해 최고경영자(CEO)로 일했으며, 30대에 브리티시텔레콤과 룩스마트에서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지냈다. 현재 컨설팅사 &#8216;린드스트롬 컴퍼니&#8217;의 CEO다. 디즈니, 펩시, 필립스, 메르세데스 벤츠, 켈로그 등 글로벌 대기업이 그의 주요 고객이다. 그는 2009년 타임지가 &#8216;영향력 있는 100명&#8217;으로 선정했고, 올해 런던에서 열린 &#8216;싱커스 50&#8217; 행사에서 18위를 차지했다. 그의 저서 &#8216;오감 브랜딩&#8217;은 월스트리트저널지(紙)에서 &#8216;최고의 마케팅 도서 10&#8217;에 선정됐고, &#8216;쇼핑학&#8217;은 뉴욕타임스 등에서 &#8216;올해의 책&#8217;으로 뽑혔다.</p>
<p>린드스트롬은 &#8220;브랜드를 종교화하기 위해서는 브랜드를 구축하는 요소를 쪼개서 각각 일관된 특성을 부여해야 한다&#8221;며 &#8220;많은 기업가가 로고가 브랜딩의 핵심이라고 착각하지만, 로고는 아주 작은 일부일 뿐&#8221;이라고 말했다. 그는 &#8220;로고를 가렸을 때 어떤 브랜드인지 알 수 없다면 실패한 브랜딩이다. 눈을 감고서도 코카콜라 병을 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키세스 초콜릿 모양만 보고도 맛을 기억해 낸다. 이렇게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기 위해 롤스로이스와 캐딜락은 신차에서 고유의 향이 나게끔 제작하고, 메르세데스 벤츠에는 아예 새 차 냄새를 연구하는 부서가 따로 있다&#8221;고 설명했다.</p>
<p><b>로고 제거하고 브랜드 가치 고민해보라</b></p>
<p>―브랜드와 종교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하셨습니다.</p>
<p>&#8220;브랜딩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입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 소비를 이끌어내는 게 바로 브랜딩이죠. 최근 소비자는 무언가를 믿고 따르고, 의지하고 싶은 심리가 커졌습니다. 경기 침체, 전쟁, 노령화, 범죄 등 불확실성이 가득한 시대이기 때문에 안정성에 대한 욕구가 늘어난 것이 배경입니다. 이것을 잘 이용한 브랜드 중 하나가 바로 일본 산리오사(社)의 캐릭터 헬로키티입니다. 산리오는 30년 넘게 수십억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8216;헬로키티는 오염되지 않은 천사다. 신이 태초에 만든 창조물이다. 헬로키티의 세상은 점점 더 번창할 것이다&#8217;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헬로키티 고객들은 제품의 질과 관계없이 헬로키티가 그려진 칫솔, 치약 등 거의 모든 제품을 사들입니다. 많은 소비자는 헬로키티가 단순히 귀여운 캐릭터를 넘어서 친구, 나를 나타내는 존재, 숭배 대상이라고 말합니다.&#8221;</p>
<p>―광적인 신념을 종교적이라고 합니다만 종교적 요소를 가진 브랜드의 조건은 뭐가 있을까요?</p>
<p>&#8220;첫째로 독특한 소속감으로, 구속력 있는 커뮤니티 의식이 조성돼 있다는 점입니다. 팬들끼리 브랜드에 대한 애정을 공유하면서 구성원 간의 관계가 강해지고 강한 소속감이 일어납니다. 예컨대, 레고는 전 세계에 다양한 연령 집단으로 만들어진 레고 커뮤니티가 약 5000개 있습니다. 레고를 좋아하는 75세 할아버지라 하더라도 레고 커뮤니티에서 환영받을 수 있죠. 둘째는 목표 의식이 있는 비전입니다. 애플은 &#8216;복잡한 것을 단순하게&#8217;만드는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드는 것이 목표죠. 셋째는 리더나 숭배 대상이 존재해야 합니다. 천재 스티브 잡스, 동심으로 돌아가서 환상을 경험하게 하는 미키마우스 등 믿음을 투영할 수 있는 인물이나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8221;</p>
<p>―다만 실제로 그런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p>
<p>&#8220;앞으로 미래 브랜딩의 키워드는 총체적(holistic) 판매가 될 것입니다. 감성과 철학, 상징성, 소비자의 개입 등 다방면의 요소가 활용돼야 합니다. 브랜딩의 역사는 1950년대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품질을 판매하는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이후 감성적(emotional) 판매로 진화해, 코카콜라와 펩시의 경쟁이 시작됐죠. 1980년대부터는 회사의 이미지가 중요한 조직적(organizational) 판매가 시작됐고, 나이키라면 무조건 믿고 사는 소비 패턴이 생겼습니다. 이후 해리포터와 포켓몬스터 등 브랜드가 치약과 벽지 등에서 사용되는 브랜드 판매가 시작됐습니다. 최근 두드러지는 브랜딩 기법은 소비자의 개별 취향을 고려한 자신(me) 판매입니다. 아디다스에서는 신발의 외피, 안감뿐 아니라 디자인 패턴까지 직접 고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층 더 진화한 단계가 바로 브랜드 진화의 6번째인 총체적 판매입니다. 브랜딩의 모든 부분이 하나의 가치를 형성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시각·청각·후각 등의 감각까지 활용해야 합니다.&#8221;</p>
<div class="center_img">
<dl>
<dd><img decoding="async" loading="lazy" id="artImg2"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512/25/2015122501404_2.jpg" alt="[Cover Story] 쇼핑학 창시자 마틴 린드스트롬" width="480" height="323" /></dd>
</dl>
</div>
<p><strong>감각이 브랜드를 만든다</p>
<p></strong>롤스로이스는 1965년에 독특한 냄새를 재현하는 데 수천만 달러를 들였다. 이전의 롤스로이스 인테리어는 나무, 가죽, 삼베, 울 같은 천연물질의 냄새가 났는데 현대 제조 기술에서 천연물질을 플라스틱으로 대체하면서 과거의 냄새가 나지 않게 됐다. 지금의 롤스로이스는 공장에서 출시되기 전 클래식 롤스로이스의 냄새를 자동차 좌석 안쪽에 인위적으로 삽입한다. 포드 역시 2000년 이후부터는 회사만의 브랜드화된 향을 사용한다. 캐딜락의 가죽 의자에 가공 처리되는 향은 &#8216;뉘앙스&#8217;라는 이름까지 갖고 있다.</p>
<p>―브랜드를 어떻게 각인시켜야 할까요?</p>
<dl class="left_img">
<dd><img decoding="async" loading="lazy" id="artImg3"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512/25/2015122501404_3.jpg" alt="[Cover Story] 쇼핑학 창시자 마틴 린드스트롬" width="240" height="304" /></dd>
</dl>
<p>&#8220;다양한 감각에 호소해 브랜드 기반을 확장해야 합니다. 식품을 판다고 했을 때 맛과 시각에 주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이 후각이죠. 수퍼마켓에서 갓 구운 빵을 진열해 빵 냄새를 퍼트리는 것이 한 예입니다. 하지만 브랜드로서 더 가치를 지니고 싶다면 더 다양한 감각을 자극해야 합니다. 예컨대 켈로그의 콘플레이크를 먹을 때 나는 바삭거리는 소리와 촉감은 연구실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제조법에 특허를 냈습니다. 이 바삭거리는 식감은 켈로그의 상징이 됐고, 소비자들은 유리병에 담긴 콘플레이크를 보면 타사에서 만든 제품이라고 해도 켈로그를 떠올립니다. 시각과 미각을 넘어서 청각과 촉감을 포함해 4가지 감각을 통합시킨 것이죠.</p>
<p>소리를 이용한 또 다른 사례가 있습니다. 인텔 광고의 브랜드 구축 캠페인마다 나오는 짧고 독특한 소리인 &#8216;인텔 인사이드&#8217;음은 컴퓨터 외부에서는 알 수 없는 인텔 칩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연구 결과 파도 소리 같은 효과음은 인텔 로고보다 더 인상적으로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습니다.</p>
<p>촉각은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요? 촉감을 잘 활용한 브랜드 중 하나가 가전 회사 뱅앤드올룹슨입니다. 뱅앤드올룹슨은 TV와 라디오, 전등 등 방의 모든 것을 조절할 수 있는 리모컨을 개발했는데 일부러 묵직하게 만들었습니다. 가볍게 만드는 게 더 고급 기술이지만, 소비자들은 전자제품이 너무 가벼울 때 제품이 허술하거나 잘 고장날 거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실제로 가전제품의 촉감 테스트를 하면, 뱅앤드올룹슨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게 나타납니다.</p>
<p>맛은 음식과 음료 산업을 제외하고는 어울리기 어려운 감각인데, 콜게이트는 예외적으로 자사에서 만들어낸 독특한 치약 맛으로 특허를 냈습니다.</p>
<p>시각은 대부분의 브랜드가 이미 상당히 활용하는 감각이지만, 더 효과적으로 시각을 활용하려 한다면 코카콜라의 사례를 본받아야 합니다. 코카콜라는 빨간색과 흰색이라는 아주 명확한 컬러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를 활용했죠. 19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산타는 전통적으로 녹색 옷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코카콜라 광고에 산타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모두에게 붉은색과 흰색으로 각인됐죠. 시각적으로 최고의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8221;</p>
<p>―어떻게 감각 브랜딩을 해야 하나요?</p>
<p>&#8220;브랜드의 로고를 떼어내고, 여러 조각으로 나눠보세요. 다양하고 세세한 조각일수록 좋습니다. 전통, 철학, 정체성, 컬러, 제품 모양, 이름, 비전, 카피 문구, 소리, 냄새, 제품 소재, CEO의 캐릭터 등으로 브랜드를 해체한 뒤, 각각 어떤 특징이 있는지 살펴보십시오.</p>
<p>단순히 홍보자료를 배포하는 것이 브랜딩이 아니에요. 기업체 브로슈어를 만드는 것은 최악입니다. 임원실 테이블 벽에 걸린 미소 띤 정장 차림의 인물 사진, 기업 본사의 건물 사진, 그리고 CEO의 상투적인 얼굴 사진은 브랜딩과 관계가 없습니다. 브랜드 구축과 상관없는 홍보는 전부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p>
<p>산업마다 다르기 때문에 후각과 청각 같은 요소는 바로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브랜드의 대표색부터 만들어보세요. 많은 소비자들이 빨간색과 하얀색을 보면 코카콜라, 케첩 브랜드 하인즈 등을 떠올릴 정도로 브랜드의 색은 중요합니다. 보석회사 티파니의 경우 고유 색상을 만들어 성공적으로 브랜딩을 구축한 사례죠. 1987년 이후 티파니는 한결같이 같은 색상의 포장을 합니다. 이 색은 &#8216;로빈 에그 블루&#8217;라고 부르는데, 매장의 인테리어뿐 아니라 카탈로그, 광고, 쇼핑백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여성은 이 색을 &#8216;티파니 색&#8217;으로 부르고, 비슷한 색상을 봤을 때 티파니를 떠올리죠.</p>
<p>그리고 브랜드를 대표하는 제품 모양을 만드세요. 특정 모양이 그 브랜드를 암시하는데도, 모양은 브랜드 구성 요소 중에서 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코카콜라, 샤넬 넘버5의 병 모양을 생각해보세요. 병 모양을 손으로 그린 것만 봐도 브랜드가 연상됩니다. 마지막으로 브랜드만의 언어를 만드세요. 어떤 특정 단어만 들으면 그 브랜드가 생각나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연구 결과 미국 소비자의 70%는 &#8216;바삭바삭&#8217; 소리를 들었을 때 켈로그를 떠올립니다. 또 60%는 &#8216;남자다움&#8217;이라는 단어를 면도기 질레트와 동일시합니다. 특히 디즈니는 언어를 잘 활용합니다. 많은 사람이 환상, 행복, 마법, 꿈, 미소라는 단어에 디즈니를 연결짓습니다. 이 단어들은 디즈니 안에서 반복적으로 활용됩니다. 디즈니 놀이동산을 방문하면 수많은 캐릭터가 다가와 &#8216;마법 같은 하루가 되세요&#8217;라고 말합니다. 이런 브랜드의 언어는 무의식 속에 잠재돼 있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지만 강력한 인식 요소로 작용합니다.&#82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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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무 문화’ … 넥슨에 대기업병 없는 이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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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admin]]></dc:creator>
		<pubDate>Sun, 15 Nov 2015 19:54:16 +0000</pubDate>
				<category><![CDATA[Business and Politics]]></category>
		<category><![CDATA[Education]]></category>
		<category><![CDATA[IT and Computer]]></category>
		<category><![CDATA[Leadership]]></category>
		<category><![CDATA[Opinio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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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비서 없어 대표도 직접 전화·이메일 임원·직원간 복지혜택도 차별 없어 채용때 임원 면접 않고 팀장이 대신 모바일 게임 환경에 발 빠르게 대응 넥슨이 올해도 게임 업체 부동의 1위를 지켰다. 넥슨 일본법인은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184억3600만엔(약 176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 증가했다고 지난 13일 도쿄증권거래소에 공시했다. 전체 매출은 498억1100만엔(약 4762억원)으로 9% 늘었고, 순이익은 191억8400만엔(1834억원)으로 41% 증가했다. 게임시장이 [&#82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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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class="ab_subtitle">
<p>비서 없어 대표도 직접 전화·이메일<br />
임원·직원간 복지혜택도 차별 없어<br />
채용때 임원 면접 않고 팀장이 대신<br />
모바일 게임 환경에 발 빠르게 대응</p>
</div>
<div class="ab_photo photo_left">
<div class="image"><img decoding="async" src="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511/15/htm_20151115235345175004.jpg" alt="기사 이미지" data-src="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511/15/htm_20151115235345175004.jpg" /></div>
</div>
<p>넥슨이 올해도 게임 업체 부동의 1위를 지켰다. 넥슨 일본법인은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184억3600만엔(약 176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 증가했다고 지난 13일 도쿄증권거래소에 공시했다. 전체 매출은 498억1100만엔(약 4762억원)으로 9% 늘었고, 순이익은 191억8400만엔(1834억원)으로 41% 증가했다.</p>
<p>게임시장이 온라인 중심에서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넥슨의 대응이 적중한 것으로 보인다. 3분기 넥슨의 모바일 게임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 증가한 103억엔(985억원)을 기록했다. ‘도미네이션즈’, ‘피파 온라인3’ 등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고, 지난 5일 공개한 ‘슈퍼판타지워’도 출시 직후 매출 상위권에 진입했다. 새로운 모바일 게임도 줄줄이 출시 예정이라 4분기도 성장이 이어질 전망이다.</p>
<p>넥슨이 급변하는 게임 시장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1위를 지키는 이유는 1994년 창사 이래 20년간 지켜온 ‘5무(無) 조직 문화’가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어지간한 규모의 기업이면 다 있는 5가지 제도가 없다는 뜻이다.</p>
<p>우선 넥슨에는 임원을 보좌하는 비서 직군이 없다. 창업자인 김정주 NXC 대표도 직접 전화를 받고 이메일 답장을 보내는 등 스스로 업무를 처리한다. 임원들이 비서진을 통하지 않고 직접 소통을 하다보니 박지원 넥슨 코리아 대표의 경우 ‘넥슨에서 이메일 업무처리가 가장 빠른 인물’로 통한다. ‘임원 비서’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수평적 기업 문화가 형성되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는 것이다. 임원 차량이나 임원 전용 주차 공간이 없는 점도 눈에 띈다. 주차장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임원용 주차공간을 빼놓는 일은 넥슨에선 상상하기 힘들다. 누구라도 예외없이 출근한 순서대로 주차한다.</p>
<p>임원과 직원 간 복지 혜택도 차별이 없다. 도서구입비에서 자기계발비, 휴가 일수, 건강검진 항목, 명절 보너스 등 각종 사내 복지혜택은 신입사원이나 대표나 똑같이 누릴 수 있다. 사무실에 직함 명패가 없다는 것도 넥슨이 자랑하는 문화다. 모두가 이름 석자 만을 표기한다.</p>
<p>직원을 채용할 때 임원 면접도 보지 않는다. 채용된 뒤 실제로 함께 일할 팀 구성원과 팀장이 면접을 한다. 그 팀에 가장 알맞은 인재를 직접 뽑도록 하는 것이다. 이영훈 넥슨코리아 인사실장은 “각 팀장이 권한을 모두 이임받았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직원의 연봉 협상, 인센티브 지급 여부도 임원이 아니라 실장급 중견간부가 진행한다.</p>
<p>넥슨의 ‘5무 문화’는 소규모 벤처기업에서 150개국에서 사업을 하는 임직원 3700명(자회사 포함) 규모의 회사로 성장하면서도 계속 지켜온 것이다. 이 실장은 “보기에 따라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작은 차이지만 회사 전체 분위기와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며 “넥슨이 ‘대기업병’에 빠지지 않고 늘 젊고 창의적인 조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했다.</p>
<p>[출처: 중앙일보] ‘5무 문화’ … 넥슨에 대기업병 없는 이유</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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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주영이 즐겨부른 &#8216;보통 인생&#8217;에는 그의 아쉬운 세월이 녹아 있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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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05 Nov 2015 06:43:4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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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2001년은 정주영 생애의 마지막 해가 되고 만다. 그해 봄빛이 물들어오는 3월 초, 정주영은 청운동 자택에서 위경련으로 누워 있다가 잠시 뜨락으로 내려와 일흔셋 나이의 집사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봐, 자넨 나이도 어린데 왜 그렇게 머리가 하얀가?” 집사는 정주영의 짓궂은 농담에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눈이 내려서 온 세상이 저렇게 하얀데 저라고 별 수 있습니까?” 그러자 정주영은 [&#82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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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div id="par" class="par">2001년은 정주영 생애의 마지막 해가 되고 만다. 그해 봄빛이 물들어오는 3월 초, 정주영은 청운동 자택에서 위경련으로 누워 있다가 잠시 뜨락으로 내려와 일흔셋 나이의 집사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다.</p>
<p>“이봐, 자넨 나이도 어린데 왜 그렇게 머리가 하얀가?”</p>
<p>집사는 정주영의 짓궂은 농담에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p>
<p>“눈이 내려서 온 세상이 저렇게 하얀데 저라고 별 수 있습니까?”</p>
<p>그러자 정주영은 온 얼굴을 활짝 펴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즐겁게 웃었다. 그 며칠 뒤 정주영의 건강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악화되었다. 급히 아산중앙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그때는 이미 손쓸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마침내 2001년 3월 22일, 정주영은 여든여섯 살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생을 접고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만다.</p>
<p>‘세상에 올 때 내 마음대로 온 것은 아니지만/ 이 가슴에 꿈도 많았지/ 내 손에 없는 내 것을 찾아/ 뒤돌아볼 새 없이 나는 뛰었지/ 이제 와 생각하니 꿈만 같은데/ 두 번 살 수 없는 인생 후회도 많아/ 스쳐간 세월 아쉬워한들 돌릴 수 없으니/ 남은 세월 잘해 봐야지’.</p>
<p>그가 생전에 즐겨 불렀다는 대중가요 ‘보통 인생’이다. 참으로 보통 인생의 노랫말과 같이 가슴에 꿈도 하도 많아 뒤돌아볼 새도 없이 뛰었던 그의 한평생이었다.</p></div>
<div id="par" class="par">
<div class="center_img">
<dl>
<dd><img decoding="async" loading="lazy" id="artImg1"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511/04/2015110403390_0.jpg" alt="아산 정주영. /조선일보 DB" width="400" height="393" /></dd>
<dt>아산 정주영. /조선일보 DB</dt>
</dl>
</div>
<p>정주영은 배우 최불암, ‘객주(客主)’의 소설가 김주영과 더불어 술을 마신 적이 있다. 세 사람 모두 꽤 술을 좋아하는지라 밤늦도록 상다리를 부여잡고 부어라 마셔라 했다. 어느새 모두 잠들었고, 문득 최불암과 김주영이 눈을 떠 보니 방에 이불을 펴고 누워 있었다. 어떻게 잠자리에 들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없어 주인에게 물어보니, 정주영이 두 사람을 방으로 옮겨 물을 먹인 뒤 이부자리를 챙겨 덮어주기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정주영은 어느새 새벽에 나가고 없었다. 정주영은 늘 술을 함께 마셔 보면 그 사람의 본성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최불암과 김주영의 술에 취한 모습을 한번 보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두 사람은 반대로 그 기회를 통해 정주영의 큰형님 같은 자상함을 느꼈다.</p>
<p>정주영은 ‘지역사회교육협의회’ 운동을 펼쳐나갔다. 지역사회교육협의회 운동은 미국 자동차 회사인 GM이 시작한 것으로, 초·중등학교 운동장 등 시설을 이용해 지역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평생교육 방법을 찾아보는 사회교육운동이었다. 정주영은 1969년 이 프로그램을 한국에 도입했다. 서울대 박동규 교수 등 교육계 인사들과 유익한 시간을 함께하면서 사회교육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정주영은 한국어린이재단에서 일하고 있던 최불암에게 ‘좋은 일 좀 같이 해보자’며 지역사회교육협의회 참여를 권했다.</p>
<p>1985년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이 들어섰다. 정장현 사장은 최불암과 동창이었는데 그가 최불암에게, 백화점 안에 자리를 내줄 테니 지역사회 기여 차원에서 극단을 운영해 보라고 권했다. 이듬해인 1986년 12월 최불암은 150석 규모의 ‘현대예술극장’을 열었다. 개막 첫 작품 ‘애니’에는 정주영 내외가 관람을 왔다. 공연 뒤 330㎡(100평) 규모의 연습장을 빌려 개장 고사를 지내는데 정주영이 참석하여 “가난하긴 하지만 예술은 원래 이렇게 출발하는 거요”라며 격려해 주었다. 정주영은 평소 예술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p>
<p>정주영은 평소 “내 모든 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며, 아버지로 인해 땀과 부지런함 그리고 가난을 알았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가난이 싫어 집을 뛰쳐나왔다가 서울에서 아버지에게 붙들렸을 때 아버지는 정주영에게 창경원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러나 돈이 없어서, 어린 아들 정주영만 들여보내고 자신은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기다렸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최불암이 말했다.</p>
<p>“현대 마크가 삼각형인데 회장님께서 통천~서산~울산을 잇는 삼각형을 표현하신 것이지요? 파란색은 들판, 노란색은 벼가 익은 모습이고요.”</p>
<p>정주영은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 상상력이 참 대단하구먼.”</p>
<p>정주영은 이북 출신 실향민이었고, 젊은 시절 온갖 고된 노동을 했던 사람이다. 그는 그런 시절에 알고 지낸 옛 지인들과의 만남을 좋아했다. 뿐만 아니라 사업 관련 인사들, 문화·예술계를 망라하고 사람 만나기를 좋아했다. 그중에는 이북 고향에서 내려온 옛 친구들도 있었고, 재벌 총수가 된 그의 도움을 받아보려고 찾아오는 지인도 있었다. 문화사업이나 사회사업을 한다며 후원을 요청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누가 되었든 어떤 경우든 간에 찾아온 사람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다.</p>
<p>그럴 때마다 비서진은 진땀을 빼야 했다. 분명히 촌지를 주라고 할 텐데, 대체 얼마를 준비해야 할지 가늠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p>
<p>“여보게, 세 개만 가져 와.”</p>
<p>정주영은 손님과의 대화가 끝나면 이런 식으로 지시를 하는 것이었다. 세 개라는 것이 30만원인지, 300만원인지, 3000만원인지 비서진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더구나 쓸데없는 일에 돈 쓰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정주영이었다. 어쨌든 야단을 맞더라도 안전하게 적은 금액부터 올라가는 요령을 썼다. 정주영은 자신이 생각한 액수가 아니면 바로 다시 가져오게 했다. 이렇게 몇 번 어긋난 뒤 마지막으로 준비하게 되는 액수가 때에 따라서는 억대로 올라가기도 했다. 그렇게 정주영은 ‘씀씀이’가 큰 부자였고 한편으론 검소하기 이를 데 없는 냉철한 ‘구두쇠’였다. <a href="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1/04/2015110403497.html">&lt;②편에 계속&gt;</a></div>
<p>[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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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선진국이 하는 어려운 일에 같이 뛰어들어야 한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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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admin]]></dc:creator>
		<pubDate>Thu, 22 Oct 2015 06:19:33 +0000</pubDate>
				<category><![CDATA[Education]]></category>
		<category><![CDATA[Leadership]]></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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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1977년 5월, 정주영은 주한 미국대사 리처드 스나이더의 면담 요청을 받고 서울 조선호텔에서 그와 만났다. 스나이더가 입을 열었다. “자동차 독자 개발을 그만둬 주십시오. 포니 개발로 기술력은 증명했다지만, 한국의 조립생산업체 모두를 합쳐도 한 해 고작 30만대 수준인 생산능력으로는 현대자동차의 존속 자체가 위험합니다. 더욱이 지금 국민소득 수준으로는 한국인이 자동차를 사줄 리가 없고요. 정 회장께서는 수출을 염두에 두신 모양인데, [&#82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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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div id="par" class="par">
<p>1977년 5월, 정주영은 주한 미국대사 리처드 스나이더의 면담 요청을 받고 서울 조선호텔에서 그와 만났다. 스나이더가 입을 열었다.</p>
<p>“자동차 독자 개발을 그만둬 주십시오. 포니 개발로 기술력은 증명했다지만, 한국의 조립생산업체 모두를 합쳐도 한 해 고작 30만대 수준인 생산능력으로는 현대자동차의 존속 자체가 위험합니다. 더욱이 지금 국민소득 수준으로는 한국인이 자동차를 사줄 리가 없고요. 정 회장께서는 수출을 염두에 두신 모양인데, 쟁쟁한 세계 자동차업계에서 신생업체인 현대차가 얼마나 잘 팔릴지 의문입니다. 자, 한 가지 제안하지요. 독자모델 개발을 그만두신다면 포드든 GM이든 크라이슬러든, 현대가 원하는 조건대로 조립생산을 할 수 있게끔 여러 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한국 내수는 물론 아시아 시장 전체가 현대의 몫이 될 것입니다.”</p>
<p>순순히 따르지 않으면 현대차를 해외에 발도 못 붙이게 하겠다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정주영은 의연했다. “조만간 한국의 1인당 GNP도 5000달러 시대를 맞이할 것입니다. 또한 몇 년 전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는 등 도로 여건도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습니다. 자동차산업은 기계·전자·화학 등 여타 산업 분야에 미치는 막대한 연관 효과나 고용창출 능력으로 볼 때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p>
<p>그 무렵 한국은 자동차산업 성공에 꼭 필요한 관련 기술과 소재·숙련공·자본·내수시장 기반이 턱없이 모자랐다. 그러나 정주영은 그것을 큰 장애물로 여기지 않았다. <strong>“첨단산업을 쫓아가려면 날아가는 비행기에 뛰어올라가 동승해야 가능합니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서 가면 됩니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가능한 길이 열리는 법입니다. 선진국들은 자기들이 하고 남은 부분만 한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이 하기를 바라지만, 그런 분야는 남는 것이 없거나 별 볼 일 없는 것들입니다.”</strong></p>
</div>
<div id="par" class="par">
<div class="center_img">
<dl>
<dd><img decoding="async" loading="lazy" id="artImg1"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510/20/2015102003178_0.jpg" alt="1984 LA 올림픽에 참석해 교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는 대한올림픽위원장 정주영. /주간조선" width="450" height="357" /></dd>
<dt>1984 LA 올림픽에 참석해 교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는 대한올림픽위원장 정주영. /주간조선</dt>
</dl>
</div>
<p><b>“어려운 일에 뛰어들지 않으면 도태”</b></p>
<p>긍정적 사고와 무서운 행동력의 화신인 정주영 앞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들도 굴복하고 문을 열어 준 셈이었다. 정주영은 1977년 제13대 전경련 회장에 취임하여 1987년까지 10년 동안 회장직을 최장기 연임하며 한국 민간 경제계의 본산인 전경련을 이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전경련의 오랜 숙원이던 회관 건립을 위해 기금 출연에 스스로 앞장서서, 1977년에 착공하여 1979년에 완공시켰다. 재임기간 동안 그는 10월유신，10·26사건, 신군부 등장,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격동기를 거치며 그때마다 우리 사회와 경제에 거세게 불어닥쳤던 거센 풍파를 맨 앞에서 대응해야 했다.</p>
<p><strong>“위험을 피하고, 편안하고 실패하지 않는 방법은 간단하다. 어려운 일에 뛰어들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도태되는 길이다.”</strong> 정주영은 많은 어려움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때마다 자신을 만류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이 말은 단지 건설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가 평생을 살며 도전했던 사업과 그의 행동 특성들을 한데 모아 요약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동 건설시장 진출이라는 일대의 모험은 그런 정신이 없이는 발상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중동은 지리적으로도 한국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문화·종교·인습·언어 면에서도 한국인에게 가장 생소한 지역이다</p>
</div>
<p>열사와 사막기후는 그때까지 한국인 어느 누구도 겪어 본 적 없는 혹독한 환경이었다. 거기다가 중동에는 이미 선진국 일류기업들이 기득권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중동 주요국의 왕족이나 고위관료 등 지배층과 과거 식민지 관계 때부터의 연고와 이해관계로 똘똘 뭉쳐 있고, 사업 기회의 정보도 한 단계 앞서 독점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또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설계나 시공 기술과 자본력, 시공 장비 어느 하나도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극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어려운 장벽은 도리어 정주영의 도전 의욕을 북돋아 주었다.</p>
<p>“중동에는 석유파동으로 인해 몇십 배 오른 석유 값으로 주체할 수 없이 많은 돈이 넘쳐난다. 그들은 몇십 년, 몇백 년을 내다보고 도로·항만·주택·공공시설 등 건설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다. 물론 우리 건설업계는 모든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러나 난관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두 번에 걸친 석유파동으로 우리나라는 외화가 바닥나서 국가 부도 직전에 놓여 있다. 외화를 벌어들일 돌파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p>
<div id="par" class="par">
<div class="center_img">
<dl>
<dd><img decoding="async" loading="lazy" id="artImg1"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510/20/2015102003180_0.jpg" alt="석유파동 당시 시내주유소에서 석유를 사려는 시민들이 몰려 석유통을 줄지어 내려 놓은 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조선일보 DB" width="540" height="362" /></dd>
<dt>석유파동 당시 시내주유소에서 석유를 사려는 시민들이 몰려 석유통을 줄지어 내려 놓은 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조선일보 DB</dt>
</dl>
</div>
<p>너무 엄청난 위험요소 때문에, 현대그룹 창업의 일등공신 역할을 한 형제들까지도 적극적으로 정주영의 중동 진출을 만류했다. 그러나 정주영은 이에 굴하지 않고 중동 진출을 강행했다.</p>
<p>정주영은 1975년을 ‘중동 진출의 해’로 선포하고, 아랍어로 현대건설 홍보영화를 만들어 중동에 배포토록 했다. 그리고 오일달러가 가장 풍부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바레인의 해외건설 수주를 위한 전략팀을 구성했다. 그 결과 바레인 아스리조선소 건설공사를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아스리조선소 공사는 공사금액 1억3700만달러로, 그때까지 국내 건설업체가 중동에서 수주한 공사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이 공사로 말미암아 한국은 명실공히 새로운 중동 진출 시대를 열게 된다. 아스리조선소 공사는 1975년 착공, 2년여 만인 1977년에 완공되었다. 이 공사는 바레인의 무하라크섬에서 남쪽으로 8㎞ 떨어진 매립지에 드라이 도크를 세우는 공사였다. 현대는 이 공사를 위해 토목공사 33만명, 건축공사 26만명, 전기공사 25만명 등 연 90만여명을 투입하는 진기록을 남겼다.</p>
<p><b>1억3700만달러 아스리 공사 수주</b></p>
<p>아스리조선소 공사에 이어 현대는 두 번째로 대형공사를 수주했다. 이 공사는 사우디아라비아 해군기지 확장공사로, 동부 주베일 지역의 기존 군항을 확장하는 사업이었다. 이 공사는 지금까지도 ‘신(神)의 공사’ ‘20세기 최대 대역사’로 불리고 있다. 현대는 이 공사를 따내기 위해 사활을 걸었으나, 구미 선진국들이 독점하고 있는 사우디 건설시장에서 현대가 입찰을 얻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미국·영국·독일 등 세계 9개 국가에서 경쟁을 벌인 이 공사에서 정주영은 승리를 위한 ‘히든 카드’를 제시한다. ‘100% 토종기술’로 건립한 울산 현대조선소의 기술 노하우를 사우디 정부 측에 보여준 것이다. 그 결과 현대는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었다. 공사금액은 무려 9억3000만달러. 이 금액은 국가예산 30%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였다. 공사 수주가 발표되자 국민은 국가적인 경사로 받아들이며 기뻐했다. 그러나 막상 시공권은 따냈지만 공사가 문제였다. 50만t급 유조선 4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주베일항 공사는 신도 시도하기 어려운 공사로 평가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주영은 모든 기자재를 울산에서 제작, 사우디까지 운반토록 했다. 외화유출을 한 푼이라도 줄여보자는 취지였다. 울산에서 주베일까지는 1만2000㎞, 경부고속도로를 무려 15번 왕복하는 거리다. 재킷 철 구조물 하나만도 무게 550t으로, 10층 빌딩 크기였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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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정주영은 세계 최대 태풍권역인 필리핀 바다를 지나 동남아 해상, 인도양을 거쳐 걸프만까지 대형 바지선으로 끌고 가는 금세기 최대 대양 수송작전을 감행했다. 수심 30m나 되는 곳에서 파도에 흔들리며 중량 550t짜리 재킷을 한계오차 5㎝ 이내로 꼭 20㎞ 간격으로 심해에 설치하는 작업은 그야말로 ‘신의 공사’였다. 공사를 완벽하게 끝내자 세계는 경악과 동시에 찬사를 보냈다. 이로써 ‘현대’의 명성은 누구라도 엄지를 치켜세울 만큼 확고한 것이 되었다.</p>
<p>정주영의 해외무대는 중동에 그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는 물론 영하 50도의 알래스카 맥켄리산 기슭에까지, 사업 기회가 있으면 어디든 가리지 않았다. 정주영은 이렇게 강조했다. “현장을 한눈에 꿰뚫고 있어야 문제가 생겼을 때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현장을 모르는 최고경영자의 말을 현장 사람들은 존중하지 않는다.”</p>
<p>정주영을 아는 사람들은 그의 불도저 같은 추진력에 놀라고, 뛰어난 창의력에 다시 한 번 놀란다고 한다. 정주영의 아이디어가 최고로 빛을 발한 것이 서산 간척사업에서 보여준 이른바 ‘정주영 공법’이다. <strong>“남이 생각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 내고, 남이 하는 일과 다르게 해야 남과 다를 수 있으며 그들을 앞설 수 있다.</strong>” 정주영 일생의 행적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행동 특징이다. 그는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의 무한한 가능성을 철저히 신봉했고 또 이를 실천했다. 건설·조선·자동차·철강 등 천하의 대기업가인 정주영은 뜻밖에도 늘 “농사짓고 싶다”는 말을 자주 입에 담았다. 이것은 자식들을 반듯하게 키우기 위해 평생을 성실하게 농사를 지었던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었다. 정주영은 서산만 개발이라는 대공사를 앞두고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흡족해 하시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으며 서산 공사현장에 각별한 열정을 쏟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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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img decoding="async" loading="lazy" id="artImg1"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510/20/2015102003182_0.jpg" alt="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현대기아차그룹 제공" width="540" height="399" /></dd>
<dt>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현대기아차그룹 제공</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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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서산 간척사업은 일제강점기부터 계획했지만 넓은 간척 면적에다 유난히 간만의 차가 심하여 토목기술상으로 대단히 험난한 공사였으며 번번이 포기해야 했던 일이다. 정주영은 이 대사업을 마무리 짓기로 마음먹고 1982년 B지구, 1983년 A지구 방조제 연결공사에 착수했다. 문제는 A지구였다. 9.8㎞나 되는 물막이 제방공사는 양쪽으로부터 둑을 쌓아감에 따라 물이 흐르는 양 둑 사이의 간격이 약 270m 정도 남았을 때 최대의 난관에 부딪혔다. 유속이 초속 8m가 넘는 밀물 때 엄청난 압력을 가진 물살의 위력은 가공스러웠다. 자동차만 한 바위도 들어가는 순간 쓸려 내려갈 정도로 무서운 속도의 급류였다. 바위에 구멍을 뚫어 철사로 엮어 만든 20t 가까이 되는 바윗덩이도 순식간에 나무토막처럼 물살에 쓸려 나갔다. 그러는 사이에 이미 쌓은 둑도 점점 물살에 쓸려 나가기 시작해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토목공학 지식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수십 년 경력의 일류 토목기사들도 속수무책 갈팡질팡했다.</p>
<p><b>고철 유조선을 물막이용으로 끌어오다</b></p>
<p>그때 정주영의 상상력이 번뜩였다. 그는 해체하여 고철로 만들려고 수입해 울산 앞바다에 대어 놓은, 길이가 332m나 되는 22만6000t급 대형 유조선을 생각해 냈다. 그는 그것을 끌어다가 물이 흐르는 양 둑 사이에 대고 유조선에 바닷물을 가득 채워 가라앉혔다. 제아무리 센 물살도 그 육중한 배를 밀어내지 못하고 멈추었다. 그 사이 무난히 둑을 연결하여 물막이 제방을 완성했다. 그런 다음 유조선의 바닷물을 퍼내 배를 띄워 다시 울산으로 돌려보냈다. 이로써 공사기간 단축은 물론 공사비를 290억원이나 절약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정주영은 여의도의 약 33배에 달하는 1억5537만㎡(4700만평)의 국토를 새로 만들어서 나라의 지도 모양을 바꾸어 놓았다. 이 놀라운 ‘정주영 공법’은 ‘뉴스위크’와 ‘타임’ 등 세계 유명 언론에 사진과 함께 자세하게 소개되었으며, 영국 런던 템스강 하류 방조제 공사를 맡았던 회사에서는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서산간척지는 제염작업을 거쳐 1987년 처음으로 벼를 심었고, 지금은 연간 50만섬 이상의 식량을 얻는 ‘보고(寶庫)’가 되었다.</p>
<p>1970년대 끝 무렵, 한·미관계는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었다. 인권외교를 내세운 카터 정부는 한국의 인권 상황에 대해 강하게 비난을 퍼부었고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1979년 6월 29일부터 7월 1일까지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여,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그러나 회담은 군사·정치·경제·외교 문제 어느 하나도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으며, 주한미군 철수를 1981년으로 미루는 것만 결정되었다. 불안정한 한·미관계 향방에 따라 한국 경제도 크게 요동칠 것이 틀림없었다. 1979년 7월 전경련 모임에서 정주영은 신임 미국대사 글라이스틴의 특별강연회를 열자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해 8월 8일 조선호텔에서 열린 강연회에는 예상 인원보다 훨씬 많은 300여명이 참석하여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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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글라이스틴 대사는 첫마디부터 한국의 안보 상황, 특히 한국의 자주국방 정책에 대해 아주 격앙된 어조로 불만을 쏟아놓았다. 남북한이 팽팽한 군사적 긴장 상태에 놓여 있던 상황에서 미국은 한국에 정치·외교적 영향력이 필요할 때마다, 미 7함대와 주한미군 공군력이 한국의 군사력과 합해져야 북한의 남침을 저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내세워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이미 1971년 미 7사단 철수, 한국군 현대화 5개년 계획에 대한 미국의 미온적 태도 등을 겪어 온 박정희 대통령은, 핵무기를 개발하면 미덥지 않은 미국의 손에 좌우되는 일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한국을 구할 수 있으리라 다짐했다. 물론 미국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핵개발을 저지하려 했다.</p>
<p><b>서울올림픽 유치 성공</b></p>
<p>전경련은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경제 관련 이야기를 기대했으나, 그는 한국 정치 상황과 자주국방 노력, 즉 핵개발에 대한 강력 반대 ‘경고’만을 늘어놓았다. 그는 “오늘 내 이야기가 한국 정부와 언론에 새어 나간다면 나는 곧 미국에 소환될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듣는 입장에서는 ‘최후통첩’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리 강연 형식이라 해도 그가 한 말들이 한국 정부와 언론에 전해지지 않을 리 없으며, 노련한 외교관인 그가 그 사실을 예상하지 못할 리 없었던 것이다. 글라이스틴의 강연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술렁거리던 청중은 흥분하여 앞다투어 항의성 질문들을 쏟아냈다. 이 강연을 추진했던 정주영과 전경련 회장단은 당황하여 서둘러 강연회를 마쳤다. 10월 6일 글라이스틴은 자신이 한 말대로 미국으로 강제 소환되었다. 국제외교 관례상 대사 소환은 극단의 조치에 속한다. 이는 1958년 이승만 정권의 보안법 파동 이후 21년 만에 이루어진, 자주국방으로 핵개발을 강력히 추진하는 박정희 한국 정부에 대한 엄중한 항의 표시였다.</p>
<p>그로부터 20일 뒤 박정희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숨을 거두고 만다. 10·26사건으로 인해 한국은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12·12사태와 5·18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뼈아픈 격동의 암울하고 긴 터널로 들어선다. 거의 완성단계였던 박정희 핵개발은 꺾이고, 그 자료들은 모두 미국으로 넘겨졌다고 한다. 그날 강철의 사나이 <strong>정주영은 눈시울을 붉히며 깊게 탄식했다. “한국 역사에 박정희만 한 지도자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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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img decoding="async" loading="lazy" id="artImg1"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510/20/2015102003187_0.jpg" alt="88 서울 올림픽. /조선일보 DB" width="540" height="322" /></dd>
<dt>88 서울 올림픽. /조선일보 DB</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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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81년 9월, 독일 바덴바덴에서는 역사적인 발표가 있었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서울을 올림픽 개최지로 발표한 것이다. 대한민국 전체는 축제의 물결로 출렁거렸다. 민족의 숙원사업을 정주영이 앞장서서 이뤄내는 순간이었다. 88서울올림픽은 일제강점기, 6·25전쟁과 빈곤, 정쟁과 사회혼란, 쿠데타, 부정부패 그리고 지구상 동서냉전의 마지막 군사 긴장 대치지역 등으로 세계인의 기억에 새겨진 한국의 얼룩진 이미지를 40여 년 만에 떨쳐버리고 한국의 저력을, 한국의 활력을 처음으로 세계만방에 드러내 보인 역사적인 세계 축제 이벤트였다. 올림픽은 평화·화합·우의를 다지는 세계인의 잔치다. 그것을 개최하기 위해서는 선진국 수준의 경제력과 기반시설, 대규모 국제대회 경험, 동서양 진영으로부터 고루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국제적인 외교 기반, 그리고 무엇보다 올림픽을 테러 등으로부터 안전하게 치를 수 있는 정치 사회 안정이 최우선 조건이다. 그러나 한국이 올림픽 유치에 성공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남한에 비해 열세에 빠질 것을 우려한 북한이 방해공작에 나섰다. 북한은 “남북이 군사 대치를 하고 있는 휴전선에서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7년 뒤에 개최될 올림픽 개최지를 서울로 정하는 것은 올림픽을 죽이는 길이 될 것”이라며 개최지 투표권을 가진 올림픽 위원들에게 반대 설득에 열을 올리고 다녔다. 그들 뒤엔 그들 편을 들어 줄 소련과 중국, 그리고 비동맹권 국가들이 있었다.</p>
<p>그만큼 88올림픽 서울 유치 성공은 기적에 가까운 반전이었다. 이 기적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집요하게 집행한 주역은 바로 정주영이었다. 당시 정주영이 88올림픽을 유치한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한국과 일본이 막판까지 신경전을 벌일 때, 정주영은 한국 IOC 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꽃바구니를 하나씩 각국 IOC 위원 방에 넣어 주었다. 그 꽃바구니는 현대그룹의 해외 파견직원 부인들이 정성스럽게 만든 것이었다. 꽃바구니에 대한 반응은 의외로 대단했다. 그 다음 날 각국 IOC 위원들은 꽃을 보내준 데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최고급 일본 손목시계를 선물했던 일본에는 감사인사가 없었다. 결국 비싼 선물보다 ‘정성’을 택한 한국의 정주영은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88서울올림픽은 역경을 기회로 만들고 절대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해서 많은 대업을 성취한 정주영의 극적인 면모를 또 한 번 세계에 드러낸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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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황희, 살인한 여자와 간통하고서도 정승직 24년 유지한 이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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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2 Oct 2015 06:10:23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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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1. 고려 충신에서 마음 바꿔 조선 조정 진출 조선 시대를 통틀어 정승을 가장 오래 지낸 재상은 황희였다. 그는 세종 시대에 무려 24년간 정승자리에 있었다. 그만큼 세종이 그를 아끼고 중용했다는 증거이다. 그는 고려 공민왕 12년인 1363년에 개성에서 강릉부사를 지낸 황군서(본관 장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의 덕분으로 음서로 출사했으나 곧 과거에 합격하여 성균관 학관이 되었다. 1392년 7월 고려가 [&#82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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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div id="par" class="par"><b>1. 고려 충신에서 마음 바꿔 조선 조정 진출</b><br />
<b></b><br />
조선 시대를 통틀어 정승을 가장 오래 지낸 재상은 황희였다. 그는 세종 시대에 무려 24년간 정승자리에 있었다. 그만큼 세종이 그를 아끼고 중용했다는 증거이다. 그는 고려 공민왕 12년인 1363년에 개성에서 강릉부사를 지낸 황군서(본관 장수)의 아들로 태어났다.</p>
<p>부친의 덕분으로 음서로 출사했으나 곧 과거에 합격하여 성균관 학관이 되었다. 1392년 7월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황희는 고려의 유신이 되고자 벼슬을 던지고 성균관 학관 친구들과 두문동으로 들어갔다.</p>
<p>그러나 조선 조정이 부르고 동료의 권고도 있어 황희는 마음을 바꾸어 벼슬길로 다시 나갔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고려 유신으로 자처한 길재 학파의 후학인 김종직과 조광조 등의 사림파에서는 그를 훌륭한 인물로 보지 않았다.</p></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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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img decoding="async" loading="lazy" id="artImg1"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510/21/2015102101985_0.jpg" alt="세종대왕(왼쪽)과 황희 /장대성" width="430" height="246" /></dd>
<dt>세종대왕(왼쪽)과 황희 /장대성</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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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그는 태종으로부터 요직에 발탁되어 많은 칭송을 받았고 태종의 아들 세종도 내내 그를 우대하고 아꼈다. 그러면 황희는 정말 정직하고 원칙만을 준수하는 완전한 청백리일까? 그는 청탁과 뇌물 수수로 여러 차례 문제를 일으킨 인물이었다.</p>
<p>세종은 결점이 많은 황희를 무려 24년간이나 정승자리에 있게 하였고 황희는 영의정을 18년간 하다가 87세에 은퇴하고 1452년 90세에 사망했다.</p>
<p><b>2. 황희, 사위 살인죄 무마 위해 청백리 맹사성에게 청탁해</b></p>
<p>황희가 의정부 찬성(종 1품)에 있을 때인 1426년에 사위 서달이 충청도 아산의 신창현을 지나다가 양반인 자기에게 예를 갖추지 않았다고 트집을 잡아 아전을 때리는데 말리는 다른 아전을 죽게 하는 살인을 저질렀다.</p>
<p>황희는 사위의 살인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친분이 있는 아산 출신의 판부사 맹사성에게 피해자 가족과의 중재를 요청했고 맹사성은 피해자 가족들을 불러 합의를 주선했고 신창 현감에게도 선처를 부탁했다.</p>
<p>살인한 서달의 부친인 서선은 형조판서였고 장인이 찬성 황희이며 아산 출신의 유력인사인 판부사 맹사성이 해당관리들에게 압박성의 청탁을 하니 서달의 종이 죄를 뒤집어쓰게 되었고 서달은 결국 석방되었다.</p></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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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center_img">
<dl>
<dd><img decoding="async" loading="lazy" id="artImg2"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510/21/2015102101985_1.jpg" alt="세종 때 청백리 정승 맹사성 동상, 맹사성의 집. /장대성" width="540" height="219" /></dd>
<dt>세종 때 청백리 정승 맹사성 동상, 맹사성의 집. /장대성</dt>
</dl>
</div>
<p>하지만 세종이 이 사건을 면밀히 조사하면서 사건을 감추기 위한 청탁과 뇌물이 있었던 것을 밝혀냈다. 사건이 밝혀질 당시 황희는 좌의정, 맹사성은 우의정이었고 둘 다 명재상으로 이름이 높았는데 이 사건으로 망신살이 뻗친 것이었다. 세종은 이들을 파면시키고 의금부에 가두었다.</p>
<p>세종은 얼마 후 황희의 얼굴을 보아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 사형감인 사위 서달은 장 100대를 치고 유배를 보냈으나 가족과 함께 살도록 하였고 대사헌 등의 강력한 반대에도 황희와 맹사성은 좌의정과 우의정에 복직시켰다.</p>
<p>그런데 1년도 안 되어 첨절제사 박유가 황희에게 뇌물을 보내다가 적발되어 체포되었다. 그리고 역졸로부터 말과 술대접을 받고 잘 봐 주었다는 보고도 있었다. 또한 황희는 처남들과 아들의 이익 등을 위해 여러 번의 구질구질한 청탁과 뇌물 사건으로 구설수에 올라 탄핵 대상이었다.</p>
<p>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1431년 황희의 재주가 비범하다고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인 영의정에 임명했고 황희는 업무처리에 탁월한 재상이 되었다. 물론 맹사성도 우의정에 복귀한 후 좌의정으로 올라 음률에 뛰어난 청백리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렸다<a href="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0/21/2015102102085.html">.</a></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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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id="par" class="par"><b>3. 황희, 살인한 여자와 간통 혐의?</b></p>
<p>황희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 중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살인한 여인과 간통했다는 세종실록의 기록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태종의 친형 이방간이 일으킨 2차 왕자의 난 때 주역을 한 박포가 역적으로 참수되고 박포의 아내는 죽산 현(지금의 안성)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그녀가 남자 종과 살을 맞대고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는 것을 다른 종이 보았다.</p>
<p>그녀는 이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 자신의 간통 현장을 목격한 종을 죽여 연못에 집어 던졌다. 몇 일후 시체가 연못에서 나왔는데 형상을 알아볼 수 없었고 관청에서는 조사가 시작되었다. 박포의 처는 서울로 도주하여 황희 집 마당 북쪽 토굴 속에 숨어서 여러 해 지내다 황희와 육체의 정을 통하였고 그 후 그녀는 자기 범죄가 무사히 해결된 것으로 알고 돌아갔다는 것이었다.</p>
<p>이것이 사실이었다면 황희는 범인을 은닉하고 은닉한 범인과 간통까지 했으니 중죄를 범한 것이었다. 황희의 후손들은 황희에 대한 위의 내용은 사관 이호문이 단종 즉위년 7월에 세종실록 10년(1428년) 6월 25일 자에 기록한 것인데 기록 내용에 대해 “당시 김종서, 황보인, 정인지, 허후, 정창손, 최항 등 9인이 회의에서 의논한 결과 허위라고 결정했다”고 주장했다(국민일보 2015년 4월 23일).</p>
<p>약 600년 전의 남녀 간의 간통사건이니 진위를 밝히기는 어렵다. 그러나 남자 종과 정을 통하고 사람을 죽이는 박포 처의 거침없는 과감한 행동을 보면 그녀가 먼저 황희라는 거물을 성적으로 유혹하여 자기 범죄를 숨기는 데 활용하려고 했을 것으로 유추는 된다. 어질고 온유한 품성으로 유명한 황희가 그녀와 간통했다는 것은 의심은 가지만 지금 간통 여부의 진실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p>
<p><b>4. 황희 흠 있으나 업무 뛰어나고 세력 절대 구축하지 않은 것이 장수 비결</b></p>
<p>황희는 박포 아내 사건 말고도 황금대사헌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흠이 많은 사람이었다. 요즘 같으면 총리는커녕 하급관리로도 임명되기 어려운 사람인 셈이다. 더군다나 황희는 태종 때 양녕대군의 폐세자를 반대 즉 세종이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하다가 서인(庶人)으로 되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세종은 그를 정승으로 무려 24년간 일을 하게 하였다.</p></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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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
<dd><img decoding="async" loading="lazy" id="artImg1"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510/21/2015102101993_0.jpg" alt="황희가 말년에 지내던 임진강가 반구정, 황희의 위패가 있는 상주 옥동서원. /장대성" width="540" height="215" /></dd>
<dt>황희가 말년에 지내던 임진강가 반구정, 황희의 위패가 있는 상주 옥동서원. /장대성</dt>
</d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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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인 세종이 무슨 이유로 자기가 왕이 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과실과 하자까지 있는 그를 그렇게 중용했을까? 세종은 관료의 인사에 있어서 국가 발전에 필요한 사람이라면 신분도 안 따지고 관직에 임명했다.</p>
<p>세종은 국사를 논하는데 황희만 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황희는 원칙에 입각한 조직의 관리 운영은 물론 장기적인 전략적 사고와 조정 업무에도 뛰어난 인재였고 자기 세력을 하나도 만들지 않아 세종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다.</p>
<p>국가 만년 대계를 위해 한글을 창제한 세종으로서는 장기적인 전략기획 수립에 뛰어나고 사심이 없는 황희를 결점이 있다 하여 놓칠 수 없었다. 황희는 뇌물과 개인적인 청탁 건으로 여러 번 탄핵 대상이 되었으나 태종과 세종 때 정승을 지낸 유명한 고관대작들에 비해 깨끗한 편이었다.</p>
<p>세종의 생각으로는 태종의 일등공신인 하륜은 권모술수에 뛰어나고 재물도 탐했다. 좌의정을 지낸 박은은 왕에게 아부를 잘하는 신하였다. 황희는 이들에 비해 정직하고 가난하게 살았으며 성품이 부드러워 하인들에게도 인정을 베푸는 인물이라 세종이 좋아했다.</p>
<p>원대한 국가 계획을 세우고 만백성에게 평안과 복지를 주는 것을 최고의 통치목적으로 하는 세종이었다. 그런 세종에게는 꼬일 대로 꼬여 그 누구도 풀 수 없는 힘든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그에 대한 해결책을 꼭 내어 놓는 지혜와 깊은 학식을 가진 황희는 절대로 필요한 인재였다.</p></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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